게을러야 돈 된다…30兆 넘보는 '게으름뱅이 시장'

입력 2019-03-28 11:23

스타트업 '부르심리테일'은 최근 편의점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소비자가 거주지 주소를 입력한 뒤 모바일 메신저나 앱을 통해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면 이 업체와 계약한 배달 대행 기사들이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서 가져다주는 형태다. 심부름 비는 2000원이다.

배달 대행 업계 한 관계자는 "편의점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배달 서비스는 O2O(온-오프 연계) 시장의 마지막 단계로 꼽힌다"며 "비교적 가까운 거리임에도 배달 대행을 이용한다는 것은 오로지 원하는 일에만 시간을 쓰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으름 경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게으름 경제란 바쁜 현대인들이 자신이 원하거나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일은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처리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나타나는 경제 현상이다. 특히 가사 노동을 겸해야 하는 20~30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게으름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은 배달 앱 시장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배달음식 시장규모는 2017년 약 15조원에서 지난해 20조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1년 만에 5조원이 커졌다. 올해는 업체들의 경쟁에 따라 30조원까지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으름 경제는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혼자 거주하는 '나홀로족'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직장 업무처럼 꼭 해야만 하는 일이나, 취미 활동처럼 하고 싶은 일을 제외한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돈을 들여서라도 시간을 아끼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배달 앱 업체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에 따르면 연초부터 최근까지 1인분 주문수는 전년 동기 대비 53%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주일에 3회 이상 '혼밥'(혼자 밥을 먹는 것)을 하는 소비자는 전년 동기 대비 107%, 직장인 혼밥족은 60% 늘었다.

이 회사 앱을 통해 지난해 1인분 음식을 가장 많이 주문한 소비자는 관악구 봉천동 거주자로 총 529회, 월평균 17회를 배달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스타트업인 '띵똥'은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서 음식을 대신 구매해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하동관에서 곰탕 2인분이랑 삼다수 2L짜리 2개 사다주세요'로 주문하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혼자 조립하기 어려운 가구를 대신 조립해준다거나 집안 청소, 반려동물 산책까지 대신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대행 기사'들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요청 건수가 많다는 게 회사 측의 얘기다.

이커머스에선 이런 추세에 맞춰 '게으름뱅이'를 위한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온라인 커머스 업체 G마켓에 따르면 올해(1월1일~3월24일) 누워서도 목에 부담 없이 책이나 노트북을 볼 수 있는 안경('굴절안경')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43%나 더 많이 팔렸다.

침대 위에 눕거나 앉아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침대 테이블('사이드테이블')의 판매도 이 기간 전년 동기 대비 2% 늘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