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래빗 #팩트체크:) 일상이 된 재난문자②
△ 전국 역대 긴급재난문자 발송맵 인터랙티브
▽ '경보' 규정에도 '주의보' 198건 발송
▽ 2019년 석달간 미세먼지 주의보 61건
▽ 충남 등 9개 시도 '멋대로' 규정 위반
▽ '보내면 그만' 촌극, 짜증은 국민 몫
▽ '보낼 만하냐' 아닌 '받을 만하냐' 중요
뉴스래빗 #팩트체크 '일상이 된 재난문자' 1편
[단독] '양치기 소년' 긴급재난문자…2년 1968건, 하루 2.5통 쏟아졌다 에서 이어집니다.
뉴스래빗은 '일상이 된 재난문자' 1편에서 국민이 '읽씹(확인하고도 무시함)'하는 긴급재난문자의 현실을 조명했습니다. 2011년 11월 18일부터 정부가 보낸 긴급재난문자는 3787건. 그 중 최근 2년 3개월(2017년 1월~2019년 3월)간만 1968건, 약 52%를 보냈습니다. 2년 새 하루 2.5통의 재난문자가 쏟아진 겁니다. 특히 2016년 발생한 '경주 지진' 이후 재난문자 발송량이 전년 대비 2.3배로 급증했음을 데이터로 확인했습니다. 미세먼지 관련 재난문자는 2019년 들어 석달만에 137건이나 보냈습니다. 이는 2014년 1년치 긴급재난문자 발송량(277건)을 3개월만에 거의 채운 셈이죠.
뉴스래빗 홈페이지에서 바(bar) 조절해 전체 지도 확인
정부와 지자체는 긴급재난문자를 '알림판'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충북도청은 2019년 설 명절 전후 일주일 간 같은 내용의 재난문자를 매일 송출했습니다. 3월 초 전국 각 지자체가 뿌린 사립유치원 개학 연기 재난문자는 이미 온 국민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죠. 국민은 "재난문자에 잠 다 깼다", "재난문자 알림에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다", "재난문자 차단 못하냐"며 '재난문자 노이로제(신경증)'에 신음합니다.
뉴스래빗 팩트체크 기획 '일상이 된 재난문자' 2편은 현행 긴급재난문자 제도를 더 자세히 살펴봅니다. 2016년 재난문자 발송 범위, 2017년 들쭉날쭉했던 발송 시간을 지적한 이후 통산 네 번째 보도입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hr style="border: 3px solid #666; width: 25%; align:left" />
뉴스래빗은 역대 긴급재난문자 전수를 수집했다. 2011년 11월 18일부터 2019년 3월 21일까지 3787건이다. 행정안전부는 발송한 긴급재난문자를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실시간 공개한다.
게시판 형태로 공개된 긴급재난문자 데이터에서 발송일시, 발송지역을 추출했다. 시기별, 지역별 긴급재난문자 수신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정제한 7년 4개월치 긴급재난문자 데이터를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했다. 추출한 발송지역 정보를 활용해 '역대 긴급재난문자 지도'도 그렸다.
긴급재난문자 내용도 분석했다. 다양한 이유로 발송한 문자를 22종으로 분류했다. 가뭄, 강(댐·수위·수문), 비, 건조, 교통사고, 단수, 미세먼지(미세먼지·황사), 민방위, 바다(풍랑·해일·해수면·파도 등), 범죄, 빙판길(도로결빙·빙판길), 안개, 안전운전, 정전, 지진, 질병(AI·메르스·진드기·구제역 등), 태풍, 폭설, 폭염, 홍수(홍수·호우·산사태·침수), 화재다. 긴급재난문자가 주로 어떤 이유로 발송되는지 알 수 있다. 긴급재난문자 1위 '호우 산사태 침수'
'폭염'보다 적던 미세먼지,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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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4개월치 긴급재난문자 중 가장 많았던 내용은 '호우·산사태·침수(973건)'입니다. 폭염(612건), 화재(439건)가 뒤를 이었습니다. 최근 극성인 미세먼지·황사는 7년 4개월을 통틀어 215건으로 많지 않은 편입니다.
연도별로 살펴봐도 '홍수·호우·산사태·침수' 비중이 가장 큽니다. 최근 3년간 모든 재난문자 중 수가 가장 많았죠. 2016년 375건 중 95건, 2017년 874건 중 233건, 2018년 859건 중 252건입니다. '호우·산사태·침수'를 제외하면 그 해 상황에 따라 비중이 변하는 편입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2016년과 2017년엔 폭염이, 더위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2018년엔 화재가 뒤를 이었죠.
미세먼지 문자는 데이터 전체를 통틀어 보니 생각만큼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7년 4개월간 215건, 전체 3787건 중 5.7% 정도입니다.
그러다 미세먼지 재난문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건 2018년입니다. 그 전까지 1년에 10건 미만이었던 미세먼지·황사 관련 재난문자가 2018년 들어 60건으로 급증했죠.
2019년 들어서는 1~3월간만 137건이나 보냈습니다. 작년까지의 모든 문자 수를 합한 것보다 2배 가까이 많습니다. 역대 미세먼지·황사 관련 재난문자 중 절반이 최근 3개월간 집중했던 셈입니다.
정부 송출규정 살펴보니
긴급재난문자는 '경보' 때만
'주의보'는 홍수·폭풍해일에만
긴급재난문자엔 '발송 기준'이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정하고 각 공공기관, 통신·방송사업자들이 지킵니다. 이름은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입니다.
규정에 따르면 재난문자방송을 사용할 수 있는 중앙행정기관만 11곳입니다. 산하기관과 각 지방자치단체까지 합하면 수십 곳으로 늘어납니다. 1편에서 언급한 재난문자 중복 발송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송출 기준 규정도 상세하게 정해놨습니다. 기준은 크게 주·야간, 주의보·경보로 나뉩니다. 야간(오후 9시~오전 6시)엔 주간에 비해 문자 송출이 제한됩니다.
규정에 명시된 23가지 재난 중 주·야간, 주의보·경보로 송출 기준을 나눈 재난은 미세먼지 포함 12가지인데요. 야간엔 이 중 태풍, 호우, 홍수, 대설, 폭풍해일 5가지만 발송할 수 있습니다. 미세먼지 경보는 야간에 받을 수 없죠. 다음 날 있을 미세먼지 저감 조치 안내가 재난문자로, 오후 5~6시 사이에 오는 이유를 짐작하시겠나요.
23가지 재난 중 21가지는 '경보'시에만 재난문자를 보낼 수 있습니다. 경보보다 위험이 덜한 '주의보'에도 발송할 수 있는 재난은 홍수와 폭풍해일 뿐입니다. 행정안전부가 정한 기준은 재난문자방송을 '매우 중한 상황에만 발송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단 뜻입니다.
그래서 몇몇 지자체는 미세먼지 등 시민의 일상과 맞닿아있는 재난에 대해서는 주의보를 별도 서비스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대기질 정보 문자서비스'가 대표적입니다.
'주의보'도 198건 멋대로 발송
2019년 4건 중 1건 '미세먼지'
그렇다면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은 재난문자를 '경보'에만 보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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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래빗이 수집한 역대 긴급재난문자 3787건 중 864건이 '주의보'란 단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은 2017년 10월 26일에 마지막으로 개정했는데요. 마지막 개정안은 홍수와 폭풍해일을 제외한 재난문자를 '경보' 단계에서만 발송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후로도 1년 5개월동안 '주의보' 재난문자가 244건 발송됐습니다. 그 중 홍수, 폭풍해일과 관련한 주의보를 제외하면 규정을 위반한 재난문자는 최소 198건이란 계산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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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6일 이후 보낸 '규정 위반' 재난문자 198건을 재난 종류별로 살펴볼까요.
눈에 띄는 건 역시 미세먼지입니다. 미세먼지는 '경보'일 때만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재난인데도, 61건이 2019년 3월 21일까지 '미세먼지 주의보'란 단어를 포함하고 발송됐습니다. 뒤를 이은 폭설, 폭염 등 '주의보 재난문자'도 규정 상 발송할 수 없지만 역시나 나갔습니다.
충남 등 9개 시도 '멋대로' 규정 위반
'보내면 그만' 촌극, 짜증은 국민 몫
충청남도는 2019년 1월 말 '미세먼지 주의보 긴급재난문자로 전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합니다. 2월부터 미세먼지 '주의보'도 재난문자를 통해 안내한다는 내용입니다. 충남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주의보 발령 시에도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게 되면 미세먼지 정보를 보다 촘촘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죠.
미세먼지 주의보에 재난문자를 발송하는 일은 명백한 규정 위반입니다. 해당 보도자료를 낸 충남 보건환경연구원 대기평가과는 "피로감이 쌓여 국민 여론이 좋지 않고, 3월 7일경 행정안전부에서도 자제 요청이 내려와 현재는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규정 위반이지 않냐고 묻자 "몇 년 전부터 재난문자 발송 권한이 지자체에게도 주어져, 내부 협의와 결재를 거쳐 시행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현행 기준 하에선 '걸리면 말고' 식으로 지자체가 일단 저질러도 사전 조치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문제는 충남도가 일을 저지르고 철회하는 한 달여 사이에 '미세먼지 주의보' 재난문자를 이미 11건 발송했다는 점입니다. 충남 보건환경연구원 대기평가과 팀장은 이에 대해 "규정 위반이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충남도가 문자를 발송하기로 한) 1월엔 행정안전부도 미세먼지 주의보 재난문자 발송을 염두에 두고 지자체에 의견을 묻고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의견조회만으로 개정을 확신할 수 있냐는 물음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뉴스래빗 분석 결과 충남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세종시, 울산시, 부산시, 대전시, 대구시, 강원도가 규정을 위반하며 '미세먼지 주의보 재난문자'를 보냈습니다. 시기는 다르지만 광주시, 경상남도도 2018년 미세먼지 주의보에 재난문자를 발송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사실 61건 중 대부분은 충남도가 규정을 위반한 2019년 1~2월에 집중해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정기적으로 재난문자 부적절 송출 사례를 모아 발표하기 때문입니다. 행정안전부가 2018년 7월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긴급재난문자 운영 가이드라인'을 확인해보니 뉴스래빗이 데이터에서 발견한 규정 위반 사례 중 일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는 기관만 수십 곳에 이르는 현실. 행정안전부의 이 같은 조치 역시 규정과 원칙을 우선하지 않는 '사후약방문' 식입니다. 다수 지자체 담당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재난문자 발송 과정에 행정안전부는 관여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단속하고 지적하는 식으로 운영합니다. 처음부터 규정과 원칙을 준수하라는 정부의 기조를 유지했다면 이런 촌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난문자 송출 기준이 중구난방으로 해석되고 남용되는 사이, 국민은 1년 5개월에 이르는 시간동안 198건에 달하는 '규정 위반' 주의보 재난문자를 받으며 피로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일상이 된 긴급재난문자, 중요한 건
'보낼 만하냐' 아니라 '받을 만하냐'
현행 긴급재난문자 제도는 보내는 이들의 상황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어떨 때 보낼 수 있고, 어떤 상황에까지 보내도 되고, 어떤 주체가 보낼 수 있는지 규정합니다. 지난 몇 년간 한반도에 불어닥친 위험 상황에 비해 긴급재난문자 대응이 미진했기 때문입니다. 주체도, 상황도 확장되면서 '공급'에만 신경써 왔습니다.
물론 많이 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은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각해지고, 지진 위험도 늘었죠.
뉴스래빗은 긴급재난문자 제도가 '더 보내는 방향으로만' 가도 되냐고 묻습니다. 두 편에 걸쳐 살펴보니 의미도 목적도 방향도 없는 재난문자가 적지 않습니다. 모든 문자에 명분은 있지만 방식이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분명 알려줬다'며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입니다. 구체적 안내 없이 '유의하라', '조심하라', '우리 일 하고 있다' 등 '안내판'으로 활용하고 있는 증거가 데이터에 있었습니다.
역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 커피숍, 사무실, 교실 등에서 무관심이 일상화하고 있습니다. 재난문자를 받은 국민은 "그래서 어쩌라고"를 되묻습니다.
긴급재난문자는 분명 필요한 제도입니다. 과연 누구에게, 얼만큼 필요한 걸까요.
정부의, 지자체의, 공공기관의 필요에 따라 '보낼만한 긴급재난문자'가 아니라 '국민의 필요'에서 '국민이 받을만 한 긴급재난 문자인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긴급재난문자가 더이상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
# DJ 래빗 뉴스래빗 대표 '데이터 저널리즘(Data Journalism)' 뉴스 콘텐츠입니다. 어렵고 난해한 데이터 저널리즘을 줄임말 'DJ'로 씁니다. 서로 다른 음악을 디제잉(DJing)하듯 도처에 숨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발견한 의미들을 신나게 엮어보려고 합니다. 더 많은 DJ 래빗을 만나보세요 !.!
책임= 김민성, 연구= 강종구 한경닷컴 기자 jongg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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