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높아진 K-바이오
[ 임유 기자 ]
한국 바이오·제약기업을 유치하려는 각국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의 현지 진출은 물론 국내에서 자금 조달과 연구개발(R&D) 협력을 확대하려는 해외 바이오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한 벨기에대사관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27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한·벨기에 라이프사이언스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필리프 레오폴드 루이 마리 벨기에 국왕을 비롯해 벨기에 제약·바이오 기업인 53명이 참여했다. 국내 100여 개 제약·바이오 기업과 교류하기 위한 자리였다. PDC라인파마, 노바딥 등 벨기에 바이오기업 9곳은 한국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도 열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수십 명의 해외 제약·바이오업체 관계자가 ‘제약 사절단’이란 이름으로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신흥 제약 강국 벨기에가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한국 바이오산업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싱가포르 대사관과 투자청도 국내 바이오기업을 유치하려는 간담회를 열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풍부한 투자자금과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 등 바이오산업 여건이 성숙하면서 한국 바이오산업이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韓 바이오 몸값 '쑥쑥'…제약강국 벨기에 "우리와 손잡자" 러브콜
한국을 성장 발판으로 삼으려는 해외 바이오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바이오 투자자금이 풍성한 국내에서 연구개발비 충당에 나서거나 뛰어난 연구 인력 인프라를 활용해 초기 단계의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을 개발하는 최적지로 한국을 꼽고 있다. 신흥 제약 강국으로 꼽히는 벨기에 정부가 대규모 제약 사절단을 이끌고 방한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과 협력 모색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국 바이오기업 유치전 치열
27일 주한 벨기에대사관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주최로 열린 ‘한·벨기에 라이프 사이언스 심포지엄’에서는 벨기에 제약·바이오기업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간 협력 확대를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세포치료제 등 차세대 치료제와 혁신 사례 등을 공유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벨기에 바이오기업들은 국내 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도 열었다. 피에터르 데크렘 벨기에 내무부 장관은 “생명과학과 헬스케어 영역은 환자와 모든 인구의 웰빙과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며 “인류 건강을 개선하고 연구개발을 향상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한국과 벨기에의 유망한 바이오기업들의 협력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바이오협회가 주최한 ‘주한 대사관 바이오산업 간담회’에서는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싱가포르 등 각국 대사관과 투자청이 참여해 각국의 바이오 관련 정책을 홍보했다.
스위스투자청은 자국의 바이오 클러스터를 설명하며 한국 바이오기업 입주를 요청했다. 핀란드투자청 관계자는 유전체 빅데이터 정부 사업인 ‘핀젠’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며 “핀젠 프로젝트에 뛰어난 한국의 유전체 분석 기업들이 참여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3년 전부터 각국 대사관 및 투자청과 함께 행사를 열고 있다”며 “매년 행사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대학과 유명 연구소들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는 최근 국내 바이오기업 바이오리더스에 유방암 췌장암 대장암 등 5대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항암 기술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 연구소가 국내 업체에 기술이전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와이즈만연구소는 또 기술 목록을 국내 기업들에 공개해 협력 기업을 찾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다나파버 암연구소는 국내 바이오벤처 보로노이에 기술이전과 함께 수백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했다.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는 자체 개발한 퇴행성 뇌질환 신약 후보 물질의 약효 평가를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에서 분사한 뉴랄리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투자받으려 한국행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하는 해외 바이오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싱가포르), 아벨리노랩(미국), 나노젠(베트남), 네오이뮨텍(미국), 페프로민바이오(미국), 코그네이트(미국) 등이 주관사를 선정하고 상장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국내 증시에 상장한 해외 바이오기업은 엑세스바이오와 티슈진뿐이다.
해외 기업들이 한국 증시 상장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유가증권시장 의약품지수의 12개월 선행 예상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60배 이상이다. 제약·바이오기업에 향후 1년간 예상되는 가치를 순이익의 60배 이상 인정한다는 뜻이다. MSCI 일본제약바이오지수, MSCI 유럽제약지수, 미국 S&P 제약지수는 20배 안팎이다.
뉴욕이나 홍콩 증시보다 상장 및 상장 유지에 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한국보다 미국 시장이 크기 때문에 미국에 본사를 세우고 신약을 개발하면서 자금 조달은 국내에서 하는 사례가 많다”며 “해외 바이오기업 사이에서 전반적으로 한국 증시 상장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해외 바이오업체에 투자하는 국내 벤처캐피털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국투자파트너스를 비롯해 여러 벤처캐피털이 인텔론옵틱스, 이뮤노멧, 사이퍼롬, PBS바이오텍, 셀레론테라퓨틱스, GKC 등 수십여 군데가 넘는 해외 바이오기업에 투자했거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 바이오벤처 뉴로보파마슈티컬스는 최근 국내에서 신약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업계 관계자는 “2015년부터 해외 바이오업체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 나타나기 시작해 점차 활성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분야 신규 투자액은 8417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업계에서는 바이오 신규 투자액이 올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