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대한항공 주총서 표대결
[ 유창재/김대훈 기자 ]
대한항공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7일 열리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 재선임 안건에 대한 치열한 표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자책임위)는 26일 회의를 열고 대한항공의 조 회장 재선임 안건을 심의했다. 수탁자책임위는 “회의 결과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조 회장 재선임을) 반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의 대한항공 지분율은 33.35%다. 대한항공 정관은 이사 선임과 해임을 특별결의사항으로 분류해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총 참석률이 통상 70~80%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지분 중 23.31~26.64%가 반대하면 재선임이 무산된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지분을 11.56%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 11.75~15.08%가 반대하면 조 회장의 재선임은 실패하게 된다.
해외 기관도 '반대'…조양호 경영권 흔들리나
대한항공은 27일 주주총회에서 전체 9명의 이사진 가운데 이달 임기가 만료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사외이사 한 명을 선임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하면서 주총 표대결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지배구조연구원 등 의결권 자문 기구뿐 아니라 플로리다연금과 캐나다연금(CPPIB),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BCI) 등 해외 연기금들도 재선임에 반대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조 회장이 주총 표대결에서 패배할 경우 1999년 4월 부친인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가 된 지 20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를 잃게 된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6일 회의에서 과반수가 조 회장이 받고 있는 횡령·배임 혐의가 기업 가치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회의에 참석한 10명의 위원 중 6명이 재선임 안건에 반대 의견을 표했다. 수탁자책임위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하면서 설치한 의결권 행사 자문기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의결권에 관해 수탁자책임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이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연금 사회주의’의 첫 사례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독립 자문기구인 수탁자책임위도 정부와 시민단체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앞으로 민간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간섭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고 전했다.
한진그룹은 “국민연금의 결정은 장기적 주주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진그룹은 이어 “국민연금의 사전 의결권 표명은 위탁운용사, 기관투자가, 일반주주들에게 암묵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며 “특히 사법부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내려진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수탁자책임위는 27일 주총을 여는 SK(주)의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서도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적용된다”며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SK(주)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될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의 사외이사 선임도 이해상충에 따른 독립성 훼손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기로 했다. 염 전 총장은 최 회장과 신일고·고려대 동문이다. 하지만 대주주 측과 의결권 차이가 커서 대한항공과 달리 국민연금의 결정이 SK(주) 주총에선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창재/김대훈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