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김학의 특수강간 혐의' 왜 적용 안했나

입력 2019-03-26 17:52
수정 2019-03-27 11:23
"로비스트 되려 윤중천 말 따랐다"는
피해여성 말과 조건만남 회원 전력에 불기소 처분

警 "노예처럼 부렸지만 檢이 무시"

법조계 "여러 여성 농간하고 성범죄 이끈
윤씨에 솜방망이 처벌"지적도


[ 안대규 기자 ] 검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한 것은 피해 여성이 조건만남 사이트에 가입했고, “윤중천이 로비스트로 키워준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는 이메일 내용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지난 25일 김학의 사건의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특수강간 혐의를 제외한 것도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뒤집을 새로운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사단은 이번 사건을 촉발시킨 주요 혐의인 '특수강간'을 입증할 추가 증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6일 본지가 확보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2013년 11월, 2014년 12월 김학의·윤중천에 대한 불기소결정서에 따르면 특수강간 혐의가 무혐의 처리된 배경엔 피해 여성의 이메일과 조건만남 사이트 회원 기록이 작용했다. 이메일은 윤씨가 2008년 3월 한 피해 여성을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피해 여성이 변호사 사무실에 보낸 것으로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했다. 이메일에는 윤씨의 농간에 넘어간 것을 후회하는 표현이 많았다. 피해 여성은 “윤씨가 남자라면 여자를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며 “1년간 말 잘 듣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돈 좀 썼다고 고소한 것 자체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둘 사이가 한때 내연관계였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성폭력 혐의를 입증하는 데 불리한 표현도 있었다. “나도 로비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고 윤씨가 하라는 대로 했다”는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또 자신에 대해 “윤씨의 ‘세번째 첩’생활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거나 “윤씨가 ‘돈 많은 나이든 남자’를 만나게 하는 것도 싫었다”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다른 피해 여성이 2006년 8년 성매매를 위한 조건만남 사이트 회원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경제적 이득을 누리려던 관계지, 폭행이나 협박에 따른 강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피해 여성의 과거 이력과 특수강간이 무슨 상관이냐”며 “윤씨가 폭력을 써 피해 여성을 사실상 노예처럼 부렸다는 진술이 많았지만 검찰이 무시했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선 당시 악랄한 수법으로 여러 여성에게 심리적 신체적 피해를 입힌 윤씨에 대해 검찰과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도 “윤씨는 여러 여성을 내연관계로 발전시킨뒤 이를 성매매 등 범죄에 악용한 악질사범인데 당시 공소시효 만료로 성범죄에 대해 처벌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 윤씨는 성범죄의 경우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돼지 않았고, 사기 및 경매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2013년 구속기소됐다. 하지만 2014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윤씨는 재판 과정에서 경매방해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자백한 반면 사기 혐의는 전면 부인해 왔다. 당시 재판부는 “사실 관계를 시인하고 자백하고 있고 일부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하고 처벌불원서를 받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설명했다.

대검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 어느 한쪽에 편견을 갖지 않고 조사하고 있다”며 “김 전 차관과 함께 윤씨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한 것 아닌 지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