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튜브선 유아 화장법 영상 넘쳐나고
백화점은 메이크업 수업까지
유아화장품 年 2000억 시장
창의력 도움 vs 외모중시 강요
[ 김정은 기자 ]
지난 2월 어느 날.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 강의실에는 여자아이 1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 강좌 제목은 ‘예뻐지는 즐거운 화장놀이’였다. 4~7세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메이크업 수업이다. 주부 이모씨는 “네 살 딸아이가 화장에 관심이 많은데 무조건 막기보다 제대로 가르치는 게 낫겠다 싶어 데려왔다”고 말했다.
화장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색조화장품 소비자층이 미취학 아동까지 내려가 ‘어린이집 아이가 화장하는 시대가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유아까지 겨냥한 상술은 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는 유아용 화장품 규제를 검토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로 화장 배우는 아이들
2014년생 쌍둥이 자매 ‘뚜아뚜지’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56만 명을 거느린 인기 스타다. 만 네 살 꼬마들이 출연한 영상 중 ‘어린이집 인싸(인사이더) 되는 화장법이에요’ 등은 조회수가 특히 높았다. 유튜브에서 ‘키즈 메이크업’이라고 검색하면 평범한 어린이들이 화장법을 소개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화장에 관심을 두는 여아가 늘어나자 업체들은 유아용 메이크업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관련업계는 유아 색조화장품 시장 규모를 2000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봉봉프랜즈, 슈슈코스메틱, 뿌띠슈, 컬러비 등 어린이 색조화장품 브랜드만 20여 개에 달한다. 아동복, 완구, 일반 화장품 제조업체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1000원짜리 중국산 매니큐어도 동네 문구점에 등장했다. 아이용 제품은 ‘비싸게 내놔도 잘 팔린다’고 보고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이들이 화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도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남역에 개장한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 매장은 어린이 전용 코너를 마련해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게 했다. 슈슈코스메틱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 어린이 스파, 네일숍 등으로 구성된 키즈 뷰티 놀이터 ‘슈슈앤쎄씨 플래그십’을 열었다. 슈슈는 남대문에서 아동복 도매업을 하던 회사다. 어린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캐리소프트는 서울 영등포구 IFC몰에 뷰티 룸을 갖춘 ‘캐리키즈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놀이도구 vs 성 역할 고착화
어린이 화장품 시장의 성장을 놓고 논란도 일고 있다. 화장해야 예뻐진다는 식의 ‘외모 코르셋(외모에 대한 사회적 강박)’을 강요당하는 연령대가 유아까지 내려가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성인문화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노출하고 경험시키는 것을 교육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한국의 어린이 화장 열풍을 다루면서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한 가치를 주입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성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온라인에서 구입한 어린이 매니큐어를 발랐다가 손톱이 빠지는 부작용이 생긴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보건당국은 12개로 나뉜 화장품 유형에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용 제품류’를 추가하고 성분과 표시 기준을 강화하는 안을 도입하려다가 포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어린이용 화장품을 공식화하는 것이 어린이 화장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식약처는 최근 ‘어린이 화장품 보존제 함량 표시제’를 도입했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피부과 원장은 “색소, 보존제 등 첨가물의 화학성분이 피부의 모공을 막아 알레르기 또는 피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아 화장품업체 봉봉프랜즈의 김민영 대표는 “아이들이 또래와 화장놀이를 하면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