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국가배상 신청 '역대 최고'…실제 배상은 10%대 그쳐

입력 2019-03-24 18:01
6064건 접수…전년보다 33%↑
증거 조작 등 악용하는 사례 많아


[ 이인혁 기자 ] 지난해 정부의 과실 등으로 피해를 봤다며 국가배상을 신청한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도로·하천 등 공공시설물 관리 부실이나 공무원의 과실 등으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 전국 14개 고등·지방검찰청에 설치된 지구배상심의회 심사를 거쳐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포트홀(도로에 난 구멍)로 자동차에 손상이 생겼거나 보도블록 파손으로 넘어진 경우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법원을 통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별개 절차다.

국가에 대한 배상신청이 증가하는 것은 관련 제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져 사소한 손해를 봤더라도 배상신청의 문을 두드려보는 시민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허위증거를 내세워 배상을 요구하는 등 일부 악용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배상심의회를 통해 접수된 국가배상 사건은 6064건으로 2017년(4558건)에 비해 33.0% 증가했다. 배상을 요구하는 사람은 늘었지만 실제 배상을 받는 비율은 정체 상태다. 국가의 책임이 인정돼 배상이 결정된 건수는 지난해 1129건으로 접수 대비 인용률은 18.6%에 불과하다. 2017년(17.6%)에 비해선 소폭 올랐으나 2013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다. 2018년 지출된 국가배상액은 9억9300만원으로 전년(8억500만원)보다 23% 증가했다.

경미한 사건임에도 ‘혹시 모르니 한번 신청해보는’ 경향이 강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당사자가 스스로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소송과 달리 큰 품이 들지 않는다. 가령 포트홀 피해를 봤을 경우 사진과 블랙박스 정도만 제출하면 각 지자체와 도로교통공단 등의 사실조회를 거쳐 배상심의회가 알아서 판단한다.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

증거 조작 등을 통해 제도를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진 것도 낮은 인용률의 이유다. 자동차 부품 교체 등을 앞두고 일부러 포트홀을 밟은 뒤 배상금을 요구하거나, 사고를 계기로 수리비를 과다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이런 사례가 다수 발견되면서 정부는 배상의 문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악의적 신청이 적발돼도 기각 결정을 내릴 뿐 해당 접수자를 처벌할 권한은 없다”면서 “그동안 국민 권익보호 차원에서 비교적 넓게 배상을 인정해왔으나 재정 누수 방지를 위해 올해부터 배상 심사를 깐깐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