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일자리'인가, '일거리'인가

입력 2019-03-24 17:35
일거리없이 일자리 만들면 혹독한 대가 초래
기업할 자유 보장·규제 철폐해야 일거리 생겨
노조도 새 일거리 위한 교육혁신 운동 펼쳐야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금융투자협회장 >


일자리는 있는데 일거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일자리는 결국 없어진다. 노조의 위력으로도 막지 못한다. 회사가 망하니까. 일거리도 일자리도 없으면? 경제가 무너져서 나라가 망한다. 일거리가 있으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래서 일거리가 일자리보다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일자리를 일거리 앞에 놓았기 때문이다. 일거리를 만들어 놓고 일자리를 계산해야 하는데, 어떻게 일거리를 만드는지를 모르다 보니 일자리 희망고문이 돼 버렸다.

또 다른 이유는 임금의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근로기준법에 임금은 ‘근로의 대가’라고 돼 있다. 즉, 임금은 일거리의 가치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일자리 앞에 붙은 표지판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거리가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일자리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니 엄청난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속 터지게 답답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이나 빠릿빠릿한 대학생 알바에게 주는 임금이 최저임금에 걸려 똑같다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임금이 일거리에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고, 노조의 위력과 정부의 복지정책 수단으로 결정된다면 일자리 참사는 피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일거리는 시장에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다. 임금 또한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논리적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일자리 정책과 최저임금 정책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깨닫게 된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나 정규직 일자리는 일거리가 없어져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해당 노동자는 부가가치에 맞지 않는 임금을 받으면서 일거리 없는 일자리에서 정년보장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일거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치열한 국제 경쟁이 있고 기술과 인구구조가 변화한다. 이런 경쟁과 변화의 파고를 이겨낼 가능성이 제일 높은 집단은 미우나 고우나 기업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일거리에 맞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일거리에 맞게 임금을 줄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일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기업으로부터 ‘기업할 자유’를 뺏는 것은 국민의 일거리를 뺏고 일자리를 뺏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업의 역할이 이렇다면 노동조합의 역할은 당장 ‘일자리 지키기 투쟁’을 그만두고 ‘일거리 만들기 운동’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운동의 핵심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교육혁신과 규제철폐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일거리를 감당해낼 지식과 능력을 키워내기 위해 필수불가결이다. 예를 들면 삽질하던 노동자에게 굴착기 운전 교육을 하고, 굴착기 운전기사에게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교육을 하고, 콜센터에서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젊은 직원들에게 마케팅 교육을 해 영업직원으로 활용하고, 단순 반복적 응대는 로봇에 맡기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강성노조가 진정 노동자들을 위한다면 철 지난 일자리를 지키는 데 힘쓰지 말고 인공지능이 주도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대대적인 교육혁신에 나서달라고 기업과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규제철폐는 일거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새로운 일거리는 새로운 시장에서 생겨날 텐데, 정부의 사전 허가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는 현행 규제방식 아래서는 새로운 일거리가 만들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규제철폐는 정부와 국회가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실패하는 이유는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를 공전시키고 기득권에 무릎 꿇는 정부는 일거리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일거리 없이 일자리를 만드는 정부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청산에 매달려 있는 이 순간에도 4차 산업혁명의 새 시대는 성큼성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일자리 지키기에 매달리는 노조, 그 등에 엎드린 정부, 교육혁신과 규제철폐를 먼 산에 아지랑이 보듯 하는 사회,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