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아파트 선택에도 중요한 요소
공기청정 기능, 커뮤니티도 실내·수영장 등 선호
상업·업무용 부동산도 미세먼지 여파
미세먼지로 밖 보다는 '안'이 중요한 조건
'집'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 나이가 있다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시작하는 남진의 '님과 함께'가 입에 맴돌 수 있다. 젊은 세대라면 '너는 별을 보자며 내 손을 끌어서 저녁노을이 진 옥상에 걸터앉아~'라는 후렴구가 익숙한 엔플라잉의 '옥탑방'이 생각날 것이다.
이처럼 집과 관련된 노래에는 연인이나 가족, 사랑과 같은 훈훈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또한 집 앞에 '초원'과 하늘 위의 '별'과 같은 낭만적인 요소들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떤 집에서건 낭만 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바로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아파트 선택의 기준도 바꾸고 있다. 주변 환경은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어야 하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도 아파트 내에서는 안심하고 활동이 가능한 공간들이 주목받고 있다. 주변환경에 있어서는 먼지가 많을 수 있는 공장 주변이나 대로변 보다는 숲이나 공원 옆이 선택의 기준이다. 예전 공장 주변은 '직주근접'의 이유를 들어, 대로변은 편리한 '교통' 때문에 인기가 있었던 곳이다. 이제는 미세먼지를 낮춰준다는 숲이나 공원 가까운 아파트들이 수요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아파트 내 시설들도 미세먼지와 관련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동으로 들어올 때에는 미세먼지를 털어주는 에어샤워를 해주고 주방이나 욕실 등에서는 급배기 시스템이 있다. 집 안 내에는 공조시스템을 통해 공기청정이 가능한 시설들을 도입되고 있다. 시설을 선택할 수 있는 재개발·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조합원들이 이러한 공기청정이나 공기정화 시스템 도입에 더욱 적극적이다.
선호하는 커뮤니티 시설도 변하고 있다. 점차 실내로 들어오고 있다. 실내 키즈카페나 수영장, 다목적 실내체육관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커뮤니티의 실내 공간을 당구장, 탁구장 등 실내 활동이 용이한 시설을 늘리는 추세다.
대형 건설사의 한 분양 관계자는 "최근 분양 시장은 '내 집 마련'에 집중되고 있다. 예전에는 분양을 받아놨다가 시세차익이나 전세를 주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보니 이왕 내 집을 살 거라면 제대로된 시설을 갖춘 곳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준말)이나 주 52시간 근무 등으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자, 환경에 더욱 신경쓰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내 집 뿐만이 아니다. 상업·업무용 부동산 시장도 선택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미세먼지가 판치는데 길거리에 마련된 노천카페를 찾거나 낮은 천장의 오래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관련된 시장 보고서도 나왔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최근 내놓은 '미세먼지와 폭염 그리고 상업용부동산 시장'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미세먼지와 폭염 등 환경변화들이 부동산 시장, 특히 리테일(소매업)과 물류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소비자들은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고,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 물품을 주문하려고 하지 때문에 물류시장의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 또한 소비자는 자주 밖에 나가지는 않지만, 한 번 나가면 상품 구매회에도 다양한 경험을 원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에 따라 지붕이 없는 몰보다는 쇼핑몰을 선호하고 수요 또한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오피스 역시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빌딩이 점점 선호될 전망이다. GRESB 인증과 같은 환경 관련된 인증이 빌딩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이 보고서는 설명했다.
일상에서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을 겪을 때 흔히 하는 말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If you can not fight and if you can not flee, Flow)'가 있다. 주로 마음이나 정신을 가다듬는 '멘탈 관리'의 명언으로 여겨지지만, 이 말의 원조는 심장전문의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심장전문의 로버트 엘리엇(Robert S. Eliet)의 저서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 : 마음의 짐을 덜고 건강한 삶을 사는 법'에서 나온 말이다.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하고, 그래야 정신이 건강해진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말이 통할까? 미세먼지라는 짐을 덜고 즐기기에는 정신도 안정이 안되고 건강에 직접적으로 무리가 간다. 결국 안으로 실내로 미세먼지를 피하고, 좀 더 '잘' 피하는 조건이 부동산의 조건이 되고 있다. 미세먼지 여파로 부동산 시장은 밖보다 '안'에 신경을 쓰는 트렌드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너른 마당과 즐비하게 들어선 노천카페 등의 풍경이 더이상 부럽지 않은 시대가 된 셈이다. 어쩌면 밖에서의 허세보다 실속이 중요해지는 요즘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 아닌 '미세먼지' 때문에 꽁꽁 숨는 듯한 우리 모습은 누가봐도 정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반도체 공장도 아닌 집에 들어올 때 에어샤워를 하면서 들어오게 될 날이 코 앞이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다가 집에 들어올 때, 현관에서 흙먼지를 털어내고 들어오라던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울 뿐이다.
*[김하나의 R까기]는 부동산(real estate) 시장의 앞 뒤 얘기를 풀어드리는 코너입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