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에디슨도 특허로 대출 받아…동산대출 부실해져도 문책 말라"

입력 2019-03-21 17:58
혁신금융 비전 선포

금융권과 취임 후 첫 간담회
금융 양극화 해소 강조

부동산·대기업 위주 여신관행에 획기적 개선 당부


[ 강경민/손성태 기자 ] “동산담보대출을 취급할 때 잘못되면 담당자가 문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과실이나 고의가 아니라면 면책해 주는 제도가 정착됐으면 합니다.”(기업은행 직원)

“담당자 입장에선 굉장히 큰 부담이겠네요. (면책이) 꼭 돼야 할 것 같습니다. 금융감독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혁신금융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금융권 종사자들로부터 혁신금융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금융권을 향해 기존 부동산 담보 위주의 여신심사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혁신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금융지원을 수차례 당부했다.


“고의·중과실 아니면 면책 추진”

문 대통령은 이날 비전 선포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업은행 직원 20여 명과 대화했다. 문 대통령은 동산담보대출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 담당자의 면책 제도가 필요하다는 기업은행 직원의 건의에 “담당자 입장에선 굉장히 큰 부담이겠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배석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면책 제도를 활성화해 운영하려고 한다”고 답하자, 문 대통령은 “금감원장께서 직접 면책을 말씀하셨으니까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기업은행이 창업기업 육성을 지원하는 IBK창공(創工) 사업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은행이 이런 역할까지 할 줄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윤 원장을 향해 “이런 일에 대해서는 평가 때 가점을 주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열린 비전 선포식에선 혁신금융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백열전구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의 사례를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에디슨에게 길을 열어 준 것은 아이디어와 기술 그 자체였다”며 “백열전구 기술 특허를 담보로 대출과 투자를 받아 제너럴일렉트릭(GE)의 모태가 된 전기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이 혁신금융 적극 동참해야”

비전 선포식에 이어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선 혁신·중소기업 대표들이 정부의 혁신금융 추진방향에 대해 의견을 내놨다. 온라인 푸드마켓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 마켓컬리와 인공지능(AI)을 통한 맞춤형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를 하는 핀테크(금융기술) 기업 등 6개 기업 대표와 엔젤투자자 한 명이 동산담보 활성화 및 맞춤형 코스닥 상장기준 마련 등을 건의했다.

한 기업인은 국내에서 엔젤투자자를 통해 5억원을 투자받았는데 독일에선 같은 조건으로 20억원을 지원받았다는 경험을 소개했다. 이 기업인은 “국내 벤처캐피털이나 엔젤투자자 기업에 대한 투자 지원이 상대적으로 박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초보 경영인들이 경영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가 있었을 때 고의가 아닌 경우엔 은행에서 (대출심사 시) 조금은 봐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같은 건의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 정부 관계자들은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도 혁신금융 추진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면책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패가 있을 수 있고, 금융기관의 손해도 발생할 수 있다”며 “금융감독 방식을 혁신 친화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회사가 혁신산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해당 임직원의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면 적극 면책하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설명이다. 행정지도 등 금융규제 전반을 개선해나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금융권은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 후 금융권과 첫 간담회를 연 데서 혁신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이번 대책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정보규제 및 핀테크 규제 완화 등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완화 대책이 빠진 것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혁신금융은 혁신성장을 위한 기업금융에 초점을 맞췄다”며 “빅데이터 규제 완화 등의 규제 완화 정책을 당초 방침대로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경민/손성태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