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핫라인' 스톱?…조명균 "대북특사 파견, 北 입장정리 기다려야"

입력 2019-03-21 17:36
"北, 4월까지 남북대화 중단"

남북교류 단체 관계자
"북한이 적어도 김일성 생일까지
南과 모든 대화 중단키로 했다"


[ 박동휘 기자 ] ‘2·28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이 우리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사실상 닫아놓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지난 15일 평양 긴급회견과 관련해 “원문을 다각도로 분석 중”이라고 말할 정도다. ‘핫라인’이 끊겼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통일부도 21일 “북측의 입장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군사합의 이행도 미적대는 北

남북한은 지난달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이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경로의 대화 채널을 가동했지만 회담 결렬 뒤 상황이 180도 바뀌고 있다. 우리 정부는 대북특사 파견 등 미·북 비핵화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고 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이날 국회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남북 대화의 어려움을 시인했다.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거나 실무 접촉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필요성을 저희가 느끼고 있다”면서도 “아직까지 북측의 입장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장관은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지금도 매일 북측과 하루 두세 차례씩 접촉이 있다”며 “북측이 입장 표현을 상당히 조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역시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철수, 공동유해 발굴, 한강 하구 민간 선박 자유항행 등의 연내 실행을 위해 북측에 회담을 제안했지만 답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도 하노이 회담 결과를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군사분야 합의 이행을 4월부터 하기로 돼 있고, 준비 작업도 끝났기 때문에 조만간 소식이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밑 대화 복원 시도 중인 정부

청와대는 북측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비공식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직후 귀국길 비행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당부했다. 지난해부터 남·북·미 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국가정보원-노동당 통일전선부’ 라인의 가동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국정원도 대북 접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남북교류단체 관계자는 “북한이 적어도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까지는 우리 정부와의 공식·비공식 대화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전했다. 최선희가 15일 우리 정부를 향해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라고 말한 것도 한국의 비핵화 중재 역할에 불만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하노이 회담 직전까지도 정부는 북측에 비핵화에 관한 포괄적 합의·단계적 접근을 미국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했다”고 말했다. 비핵화 로드맵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면 영변 핵 영구 폐기를 대가로 대북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가동될 거라고 북한을 설득했을 것이란 얘기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미국이 하노이 실무회담에서조차 우리 정부에 구체적인 상황 변화를 설명해주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정부가 중재를 잘못한 것으로 북한에 비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北, 자력갱생 강조하면서 내부 단속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더욱 더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통해 주민들에게 자력으로 난관을 헤쳐나가자고 주문했다. 신문은 “어떤 시련이 휘몰아쳐 와도 끝까지 자기의 힘으로 밝은 앞길을 열어나간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대미 전략을 고심 중인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관전 포인트는 최선희가 언급한 ‘김정은 성명’ 전에 남북이 대화 채널을 복원할 수 있느냐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공식화한다면 약 1년간 공들인 평화 프로세스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한 남북교류 단체는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 행사에서 물꼬를 찾을 필요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대북특사를 위한 사전 작업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