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최근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인기를 끈 배우 김서형의 대사다. 거대 자본과 경찰 공권력 사이에 유착의 연결고리가 확인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박상기 법무부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 민갑룡 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까지 '명운을 건' 비리 대척결을 천명하고 나섰지만 경찰이 이 같은 기대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찰이 감당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난 1월 김상교 씨의 고발로 버닝썬 내 폭행 논란이 불거졌을 때 출동한 경찰이 김씨 손목에 수갑을 채우지 않고 CCTV를 명확히 확인해서 클럽 가드들의 폭행여부를 밝혀냈다면 추악한 '승리 게이트'는 어쩌면 영원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상교 씨의 폭행 폭로 이후 강남경찰서에 기자들의 문의가 이어지자 담당 경찰은 말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CCTV가 곳곳에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일이 생긴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경찰에 폭행당했다고 주장한 김상교 씨는 오히려 성추행 혐의를 쓰게 됐다.
한 여성이 김상교 씨에게 클럽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
경찰은 "클럽 내에서 성추행을 했다고 의심되는 정황이 포착됐다"면서 김씨의 성추행에 무게가 실린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신고한 중국여성은 실제로는 버닝썬의 마약운반책이었다.
클럽 내에서 물뽕이나 마약이 성행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안그래도 수십 억원을 버는 클럽이 설마 마약 유통을 하겠나?"라고 말하는 경찰에게서는 전혀 철저한 수사 의지를 엿볼 수 없었다.
도대체 경찰이 어디까지 막아주고 있었길래, 얼마나 안심했으면 본인부터 마약을 투약하고 있었던 버닝썬의 이문호 대표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는 속에서도 "버닝썬은 안전하니 앞으로도 계속 찾아달라"라고 고객들에게 호객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와중에 승리가 해외 투자자에게 여성을 소개시켜주는 성접대를 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담긴 문자 메시지가 폭로되자 파문은 일파만파 됐다. 최초 보도 기자가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북미정상회담 중에 이슈가 분산될 우려가 있으니 지금은 터트리지 않겠다"며 후속 보도를 미루고 있는 동안 경찰은 "현재까지 (성접대 지시) 카카오톡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본 확인은 못했을 뿐더러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술을 들었다"라고 일방적으로 승리의 진술을 신뢰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제보자는 경찰을 믿을 수 없어서 권익위원회에 해당 대화 원본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고 급기야는 경찰의 압수수색을 피해 밤 11시에 검찰에 찾아가 수사를 의뢰했다.
범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경찰의 눈을 피해야 하다니. 영화에서도 정의로운 형사 두어 명 쯤은 그야말로 사생결단 불의와 싸우는데.
승리 카톡 진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동료 연예인인 가수 정준영이 몰래카메라로 성관계를 찍어 유포한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이 이틀 동안이나 정준영의 메시지 원본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포렌식 복원업체를 압수수색하자 제보자를 찾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 아닌가',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국민의 원성이 극에 달하자 경찰청장은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천명했다. 왜 이런 일이 터지고 나서야 경찰은 '명운'을 걸어야 하나. 공정하고 정확한 수사는 공무원으로서 그들의 업(業)이 아니던가. 그러라고 국민들이 혈세를 내고 있었던 것인데.
인력 126명을 투입해 '버닝썬 게이트'를 수사 중이던 경찰은 수사관을 추가 투입해 해당 사건 인력만 16개팀 152명으로 확대했다.
서울경찰청은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해 최근 경찰 유착의혹이 확대되고 연예인 내기 골프 의혹 등이 추가됨에 따라 수사 인력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특히 경찰 유착과 관련된 사건에 인력을 집중해 수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클럽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경찰과 업소·연예인 간 유착 의혹에 대해 사과 입장을 발표하고, 경찰이 모든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청을 소속청으로 둔 행안부 장관으로서 경찰로 하여금 사건의 진실 규명과 함께 유착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할 경우 어떠한 사태가 닥쳐올지 모른다는 비상한 각오로 수사에 임하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관의 유착 비리가 사실로 밝혀지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하도록 하겠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제기된 모든 쟁점에 대해 경찰의 모든 역량을 가동해 철두철미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아울러 "범죄와 불법 자체를 즐기고 이를 자랑삼아 조장하는 특권층의 반(反)사회적 퇴폐 문화를 반드시 근절하겠다"며 "대형 클럽 주변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전국 지방경찰청을 일제히 투입해 단속함으로써 관련 범죄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말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고(故)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용산 참사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김 전 차관 사건은 우리 사회 특권층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부실수사를 하거나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은폐한 정황이 보인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버닝썬 사건과 김 전 차관 성접대 의혹, 장자연씨 사건에 관한 보고를 받은 뒤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수사 지시가 마냥 믿음직하기보다는 여전히 의아하다. 그럼 그동안 경찰은 어디까지 진실을 외면하고 특권층을 비호해 왔던 것인가.
최초 제보자였던 김상교 씨는 클럽 직원과 경찰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이에 조사를 받으러 출두해서 심경을 밝혔다.
"저는 폭행 피해자였고 국가 공공기관의 보호를 받기 위해 112에 신고를 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김 씨 어머니의 진정을 받은 국가인권위 조사결과 경찰은 버닝썬 연행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직원들과 20분간 실랑이를 하고 경찰에게 욕설도 수차례 했다고 체포서에 작성됐는데, 실제로는 실랑이는 2분, 욕설은 한 차례였다.
'경찰총장'이 뒤를 봐준다고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도 "이거 알려지면 구속감"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던 특권세력의 사적인 대화 민낯이 드러난 마당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응당 그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는 것.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하는 것. 어떤 사건이든 경찰과 검찰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는 것. 그 당연한 일들이 이처럼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이 나서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 '특별한' 일이 됐다.
자신이 '국민들의 역적이 됐다'면서 다소 불만섞인 심경발표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던 승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건의 시작이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라면서 "‘경찰총장’이라고 쓴 것처럼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들끼리, 친구들끼리 허풍 떨고 허세 부린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냥 장난으로 한 대화가 여론을 통해 부풀려 지면서 탈세, 경찰 유착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체는 아무 것도 없는 허풍이었다는 것.
역대 최악의 '버닝썬 게이트'를 두고 '바보들끼리 한 짓'에 불과하다는 해명을 듣는 국민들은 그야말로 '바보'가 된 기분이다.
승리와 그의 파트너들의 추악한 '바보 짓거리'에서 경찰은 어떤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