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미정상회담(2월 27∼28일, 하노이)이 대화의 여지만 남겨놓은 채 합의문 없이 막을 내린 지 보름이 훌쩍 넘었지만, 북한과 미국은 구체적인 대화 재개 움직임 없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폐기 플러스 알파(+α)'를 요구한 이후 일괄타격식 빅딜론을 내세우고 있고, 북한은 하노이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 대(對) 민수용 제재 다섯건 해제' 방안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며 맞서고 있다.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지난 15일 평양 주재 외신 기자 및 외국 외교관들 대상 긴급 회견을 개최한 이후, 이대로 가다간 북미관계가 또 한차례 요동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 부상은 북한이 지난 15개월 동안 미사일·핵실험을 중단하는 등 변화를 보여줬음에도 미국의 상응 조치가 없었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만간 미국과 비핵화 대화를 계속할지, 핵·미사일 시험유예를 유지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미 양측 모두 대화의 '판'을 깨려는 태도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최선희 부상도 지난 15일 회견에서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했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최 부상 회견과 관련, "협상이 확실히 계속될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15일(현지시간) 평가했다.
결국 북미 양측이 대화할 생각은 갖고 있지만, 양보할 생각은 보여주지 않고 있는 상황으로, 공을 상대편 코트로 넘기려고만 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부 전문가는 '일괄 타결'을 들고 있는 미국과, '단계적 비핵화'를 들고 있는 북한이 만날 수 있는 중간 지점은 '포괄적 합의와 그것의 단계적 이행'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보유 핵무기와 핵물질까지 포함하는 최종단계 비핵화 조치와 그 대가로 미국이 제공할 북미수교, 제재해제, 평화협정 등을 담은 포괄적 공정표를 만들되, 그 이행은 단계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제언이다.
북미간 신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보유 핵무기와 핵물질까지 일거에 폐기할 수는 없다는 북한과, 비핵화의 최종단계 모습을 모른 채 북한이 하고자 하는 조치만 취하도록 할 수는 없다는 미국이 상호 접점을 찾으려면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17일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생각은 미국이나 북한이나 다 있지만, 해법에서 간극이 큰 게 문제"라며 "북한은 이번에 영변 카드 하나만으로는 제재완화를 받아낼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을 테고, 미국은 현실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 카드가 나온다면 걷어차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하노이에서 보여준 카드는 핵 포기 카드가 아니었다며 "영변 일부 시설 폐기 후 다음 단계를 어떻게 할지 밝히지 않는다면 미국으로선 핵 포기 의사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으므로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북미간의 팽팽한 대치 국면 돌파를 양국에게만 맡겨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최선희 부상이 남한 정부는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라고 이야기했지만 지금 상황이 굉장히 경직돼 있기 때문에 누군가 움직여줘야 한다"며 한국이나 중국이 역할을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지, 다시 말해 몇 건의 제재완화와 맞먹는지 계산하는 게 문제라면 한국 정부가 중간에 얼마든지 합리적인 절충안을 내놓을 수 있다고 최 실장은 설명했다.
다만,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틀어진 이유가 '영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국내 정치 상황에서 기인했다면 방정식이 훨씬 더 복잡해져 "한국의 촉진자 역할, 중재자 역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최 실장은 내다봤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 양자 대화 틀을 유지하되 협상이 난관에 부닥친 만큼 남북미가 비핵화 이행방안을 논의하는 3자대화에 나서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을 중심으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맞춘 제재완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교수는 "대북제재를 결의한 주체가 미국이 아닌 유엔 안보리인 만큼 북한이 일정한 비핵화 단계를 밟는다면 이에 상응하는 제재완화를 안보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며 "양자 간 협상 틀 외에도 보조적 수단으로 대화를 안보리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