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영화보다 영화같은 '버닝썬 사건' 총정리

입력 2019-03-15 14:46
수정 2019-03-16 12:27


"너희 돈으로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2015년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 황정민이 경찰서에 대리 자수하러 온 유해진을 향해 내뱉는 극중 대사다.

영화에서는 부유층이 경찰 권력자와 유착해 범죄를 은닉하고 지도층 자제들이 연예인들과 뒤섞여 클럽에서 환각파티를 벌인다. 어디 이뿐인가. 힘이 없는 약자에게 맷값을 주고 폭력을 휘두르고도 돈다발을 뿌려 해결한다.

일선 경찰서 담당 형사는 재벌 후계자의 범죄 사실을 숨겨주는 데 급급하고 이에 황정민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면서 비난한다.

폭행, 물뽕, 마약, 성폭행, 성접대, 몰래 카메라, 음주운전, 경찰 유착….

지금 클럽 '버닝썬 게이트'에 등장하는 범죄 종합세트는 지금 바로 영화로 만든다 해도 손색없을 만큼 그 시나리오가 흥미롭다.

'버닝썬'이라는 클럽을 찾은 한 남성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여성을 보호하려다가 직원과 시비가 붙으면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 속 '버닝썬 게이트'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남성이 폭행당한 뒤 112 신고를 하자 현장에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갈비뼈가 부러진 듯한 통증을 느낀 남성은 "저 가드들이 날 폭행했다"고 말하지만 경찰들은 오히려 그 신고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공무집행 방해' 즉 난동을 부리면서 경찰의 공무를 방해했다는 것.

클럽 직원은 왜 입건하지 않느냐고 항의해 봤지만 경찰은 뒤로 수갑을 찬 남성의 몸을 가격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함을 참을 수 없었던 남성은 자신이 겪은 황당한 일을 사진과 함께 한 커뮤니티에 올려 폭로한다.

"클럽 '어깨'들한테 맞고 억울해서 경찰에 신고했더니 경찰이 날 때렸습니다."


처음엔 술 마신 남성이 행패를 부렸겠거니, 경찰이 설마 아무 죄없는 시민을 때렸을까 반신반의 했다.

이 글이 온라인 상에서 시선을 끌자 한 신문사 기자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폭행당했다고 112 신고를 한 사람이 오히려 경찰한테 맞았다고 주장하던데요?"

경찰은 손사래를 쳤다. "에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CCTV가 몇 대 인데 그런 일이 일어날 수나 있겠습니까."

"하긴..."


남성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았고 지켜볼수록 일은 점점 꼬여만 갔다.

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를 했던 남성이 실은 클럽에서 그날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신고한 것이다.

남성은 이러다 나만 죽겠구나 싶었던지 더 적극적으로 버닝썬 내 다른 의혹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저희 집 주위를 경찰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때 빅뱅 멤버 승리라는 연예인이 방송에서 간접광고 한답시고 버닝썬을 언급했던 것이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끌었고 곧이어 클럽 내 '물뽕 성폭행' 피해 등 제보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이 "폭행한 적 없다"면서 공개한 CCTV는 편집됐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성추행 당했다고 신고한 중국여성은 실제로는 버닝썬의 마약운반책이었다.

클럽 내에서 버젓이 마약이 유통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은 수사조차 하기 전에 말한다.

"안그래도 수십 억원을 버는 클럽이 설마 마약 유통을 하겠어요?"

성범죄, 마약 유통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버닝썬'을 승리와 공동 운영했던 이문호 대표는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버닝썬은 안전하니 계속 찾아달라"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얼마 후 진행된 이 대표의 마약검사 결과는 양성. 클럽 대표 본인은 물론 직원들도 마약을 투약하고 있었다.



이 즈음 승리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서는 새벽에 파쇄차를 불러 어마어마한 양의 문서를 파쇄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승리는 해외 투자자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에 휘말린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메시지에 따르면 승리는 2015년 12월 6일 밤 직원 김씨에게 대만에서 온 외국인 투자자 일행을 '접대'하라고 지시했다.

승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줘라"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직원 김 씨가 "일단 자리는 픽스해 놨다. 경호까지 붙여 잘 케어해 가겠다"라고 말했다.

승리는 "응 여자는? 잘 주는 애들로"라고 하고 유리홀딩스 대표 유 모 씨는 "내가 지금 창녀들을 준비하고 있으니 두명 오면 ○○이가 안내하고 호텔방까지 잘 갈수 있게 처리해"라고 거들었다.

파문이 커지자 YG엔터테인먼트 측은 "본인에게 확인해 본 결과, 해당 기사는 조작된 문자 메시지로 구성됐으며,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라고 반박했다.

승리 카카오톡 메시지 진위에 관심이 쏠리자 경찰은 말한다.

"현재까지 (성접대 지시) 카카오톡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본 확인은 못했을 뿐더러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승리의) 진술을 들었다."

하지만 그 발언 후 실제 대화 원본은 경찰을 믿을 수 없었던 제보자가 권익위원회에 제보한 상태였음이 드러났고 경찰은 스스로 망신만 자초했다.

한술 더 떠 권익위는 경찰의 압수수색을 피해 밤 11시 다급하게 검찰을 찾아가 원본을 제출한다. 경찰의 공권력을 피해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버닝썬 게이트'에서 승리의 단체 대화방이 '스모킹건'으로 떠오르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가수 정준영. 그는 승리 패거리들과 수시로 여성을 상품화한 메시지를 주고받음은 물론 몰래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성관계 동영상을 주고받으며 희대의 파렴치범으로 전락한다.

경찰과의 유착 또한 확인되면서 FT아일랜드 최종훈은 경찰고위 공직자의 도움으로 음주운전을 무마했다는 사실까지 새롭게 드러난다.

'경찰총장'이 뒤를 봐준다는 2016년 7월 메시지로 인해 당사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청장이냐 서울지방경찰청장이냐던 대화방 속 '경찰총장'은 실은 총경급 인사인 것으로 유씨 조사에서 드러났다.

총경은 일선 경찰서 서장급으로, 흔히 '경찰의 꽃'으로 불린다. 일반 공무원으로 비교하면 4급 서기관에 해당한다.

'버닝썬 게이트'가 정준영 몰카 동영상 논란으로 논점이 흐려진 경향이 있지만 사건의 본질은 거대 자본과 경찰 간의 유착 혐의다. 특히 음주운전 사건 언론 보도 무마를 할 정도면 경찰 내 비호세력이 상당한 권력자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승리 정준영 카톡'을 입수한 공익 제보자를 대리해 권익위에 신고한 방정현 변호사는 해당 카톡이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8개월간의 수만 건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은 정준영이 자신의 카톡에 열어 놓은 여러 개의 방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온 내용들이라고 밝혔다.

방 변호사는 "경찰과 유착 관계가 굉장히 의심되는 정황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제보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서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 최고위층까지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 진행하는 수사뿐만 아니라 감사관실에 내부비리수사대 등 감찰 역량을 총동원해 철저히 수사 감찰해 나가겠다"며 "거기서 어떠한 비위나 범죄가 발견되면 지위고하 막론하고 철저히 단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땅에 떨어진 경찰의 신뢰를 경찰 스스로 주워 담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 언제나 악인은 그 죗값을 치르고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사그러드는 순간 제 2의 버닝썬 게이트와 제2의 피해자는 또 생겨날 것이다. 영화 '버닝썬 게이트'가 개봉한다면 관람등급은 당연히 청소년 관람불가. 우리 어린 자녀들이 열광하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영화 속 악인보다 더 파렴치하고 일말의 양심이라고는 없는 '범죄자'였으니 말이다.

"'경찰총장'님, 당신은 대체 누구며 지금 어디에서 이 기사를 보고 계십니까."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