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에 낭비되는 세금은 누가 책임집니까. 정부의 밀어주기 정책이 없었다면 제로페이는 이미 시장에서 자연스레 도태됐을 것입니다."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글이다. 청원인은 해당 글에서 "제로페이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들어진 소상공인을 달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소상공인들이 숨통이 트일 만큼 혜택을 볼 수 있겠느냐"며 "제로페이는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고 꼬집었다.
서울시가 소상공인을 위해 야심차게 도입한 제로페이 사업이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로 그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15일 전문가들은 간편결제 시장이 카카오페이와 삼성페이를 필두로 4강 체제를 굳힌 상황에서 고객을 끌어당길 만한 유인책이 '제로'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월 한달간 제로페이의 결제금액은 2억원에도 못 미쳤다. 같은 달 개인카드 결제금액(58조1000억원)의 0.0003%에 불과했다.
지난 1월 말 기준 제로페이의 등록 가맹점 수는 4만6628개. 가맹점당 평균 거래실적은 0.19건, 결제액은 4278원에 그친 셈이다.
사업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초라한 성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투입 예산과 비교하면 결과는 더 쓰라리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사업에 지난해만 30억원의 예산을 들였다. 올해는 38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중기부도 올해 제로페이에 60억원의 홍보 예산을 준비했다.
향후 성적에 대한 기대감도 찾아보기 힘들다. 고객 유인책이 '제로'에 가까워 성장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연태훈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로페이의 낮은 수수료는 가맹점 입장에서야 좋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며 "카드 공제 혜택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제로페이의 소득공제 방안은 소비자 유인책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카드 사용에 따른 소비자 편익을 감안할 때 제로페이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제로페이의 불균형적인 비용구조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관 주도의 불균형적인 비용구조를 가진 제로페이의 보편화 여부는 향후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급변하는 지급결제 시장흐름과 경쟁 사업자들의 마케팅비용 기반 소비자 혜택 제공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로페이는 간편결제 사업자와 은행 등 공급업체가 수수료 수입 없이 비용을 감당하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적인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일었던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논란은 제로페이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검토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정부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제로페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지만, 나빠진 여론을 복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제로페이 상용화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한 데 묶어 반대를 표한 청원이 12개(14일 기준)에 달했다.
한편 국내 간편결제 시장은 카카오페이·삼성페이·네이버페이·페이코가 4강 체제를 굳건히 형성하고 있다. 30여개가 넘는 페이 서비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이들의 파이를 뺏어올 만한 대항마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제로페이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얘기다.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연간 거래액 20조원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간편결제 시장 규모(39조원)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작년 3월 처음으로 월 거래액 1조원을 넘겼고, 9월에는 2조원을 돌파했다. 12월에는 전년도 연간 거래액에 준하는 3조원을 기록했다. 성장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페이는 작년 1분기 말 누적 거래액 18조원을 돌파했다. 2015년 9월 출시 후 3년 누적 거래량은 13억건을 넘어섰다.
증권업계는 카카오페이와 삼성페이의 지난해 월평균 거래액이 각각 1조1000억원,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등에 업은 네이버페이는 업계 추산 월평균 거래액이 9000억원, NHN엔터테인먼트의 페이코는 4000억원이다.
백두산 연구원은 "주도적으로 가맹점과 계약하고 차별화된 마케팅을 수행하는 업체, 결제절차에서의 편의성 차별화를 도모하는 핀테크 대형사업자 위주로 결제성자금이 흡수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