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의사의 영상진단을 보조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A사. 이 회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지만 의료기관에서 이를 활용한 뒤 진료비를 받을 수 없다. 건강보험법에 따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려면 의사가 혼자 영상진단을 하는 것보다 AI를 활용할 때 진단 정확도 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논문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 평균 2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의료용 AI, 3차원(3D)프린팅, 로봇기기 등을 개발한 국내 업체들이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지 못했던 이유다.
앞으로는 이런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 업체들의 시장 진입 속도가 빨라진다. 정부가 혁신의료기술로 인정 받으면 문헌평가를 생략하고 제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새 평가체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15일부터 이런 내용을 담은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술의 시장진입 속도를 높이겠다”고 발표한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의 후속조치다.
복지부는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만 평가하던 기존 신의료기술 평가 시스템에 잠재성 평가 항목을 새롭게 도입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거나 환자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이 높은 의료기술은 이를 논문으로 완전히 입증하지 않아도 진료비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조건부 신의료기술로 승인 받더라도 활용기간과 의료기관 등은 제한한다. 이들 기술은 환자가 비용을 좀 더 많이 부담하는 예비급여 항목에 넣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방침이다. 이후 3~5년 정도 현장에서 활용한 결과를 토대로 혁신의료기술의 유효성을 재평가한다.
복지부는 이날 신의료기술 평가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이전에는 신의료기술평가 대상 여부를 판단하려면 외부 전문가의 서면 자문을 받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보건의료연구원 내부 평가위원들이 이를 판단한다. 이를 통해 280일 정도 걸렸던 신의료기술평가 기간이 250일로 단축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혁신의료기술에 별도 평가 트랙을 도입해 그동안 늦어졌던 혁신 의료기술 활용을 늘릴 것”이라며 “다만 의료기술의 안전성은 엄격하게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