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원전 수요 커지는데
한국만 자학적 脫원전 거꾸로 행보
우리 원전산업 강점 포기해선 안돼
정동욱 <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 >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8년이 됐다. 그동안 세계는 원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사고 당사국인 일본은 신안전법을 제정하고 후쿠시마 사고의 직접 원인이 된 쓰나미에 대한 대처는 물론 지진, 산불, 화산 등 다양한 자연재해와 중대사고를 대비해 안전성을 높였다. 사고 직후 원전 제로(0) 정책에서 20% 수준의 원전 비중 유지로 돌아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후쿠시마 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얘기도 있다.
세계적으로 주춤했던 원전 수요도 되살아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건설에 들어간 원전만 38기다. 원자력을 이용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터키, 방글라데시, 벨라루스가 동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폴란드 등은 원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영국, 핀란드, 미국이 신규 원전을 건설 중이고 체코, 불가리아 등 기존 원전 보유국도 신규 원전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에너지기구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의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원자력에 비판적이던 미국의 참여과학자연맹도 임박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원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지금 세계 원자력 시장은 러시아의 독무대다. 12개 국가에 36기의 원전을 건설 또는 계약 중이라고 한다. 이로 인한 러시아 국영원자력공사의 해외 매출은 145조원을 예상하고 있다. 중국도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이미 프랑스 전력공사와 합작으로 영국에 원전을 짓고 있다. 반면 초기 원자력 선도국이었던 프랑스, 미국은 신규 원전 건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랑스는 핀란드에 수출한 유럽형 경수로 1호기가 지난 7일 운영허가를 받았다. 무려 10년이 지연됐다. 미국은 4기의 AP1000 건설 중 2기가 중단됐다. 원전 건설이 상당 기간 중단돼 산업 인프라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영국이 원자력을 외국에 의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경쟁력 있는 원전을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 중국을 제외하고는 한국밖에 없다. 일본이 원전시장에 뛰어들려 하지만 자국에 건설하지 않고는 경쟁력이 없다. 영국과 터키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미국에서는 저렴한 가스발전으로 원자력이 상당히 어렵다. 원전을 유지하기 위해 뉴욕, 일리노이 등 여러 주정부가 청정에너지 보조금을 원전에 지급할 정도다. 원전이 기후변화 대응에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전력연구소(EPRI)에 따르면 ㎾당 4000달러 이하로 건설이 가능해야 정책적 지원 없이 원전의 시장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현재 조지아주에서 건설 중인 신규 원전의 공사비는 ㎾당 1만달러를 넘고 있다. 최초 호기의 시행착오와 건설관리 미흡이 주요 원인의 하나로, 산업 인프라가 무너진 탓이다. 반면 우리의 원전은 어떤가. APR1400은 UAE 계약 규모를 보면 ㎾당 3300달러 정도다.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기술심사도 통과했다. 인허가 불확실성도 없으니 미국 시장에 도전해볼 만하다.
우리는 사실상 서방 세계 유일의 경쟁력 있는 원전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탈원전으로 이런 인프라가 위기를 맞고 있다.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른다. 8년 전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강점을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