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장하성 신임 중국대사에게

입력 2019-03-12 17:51
"박근혜 유화정책 실패 거울 삼아
大중화 패권주의 실체 파악하고
대한민국 국익 제대로 수호해야"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 조일훈 기자 ] 아직 아그레망을 받지 않았지만 장 대사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장에 이어 또다시 중책을 맡았습니다. 일단 축하를 드려야겠죠.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도 여전하고요. 다소 의외긴 했습니다. 중국 대사직은 대한민국 외교의 최전선입니다. 요즘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에서 ‘글쎄요’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휘한 분이 갑자기 북핵과 안보 문제를 챙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죠.

하지만 장 대사님은 이 정부의 거물이고, 중국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예우를 받을 겁니다. 전임자(노영민)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영전한 것도 도움이 되겠지요.

그래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어설픈 ‘관시(關係)’ 논리로 중국의 호의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 폐해를 처절하게 보여준 사람이 박근혜 전 대통령입니다.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톈안먼 성루에 올랐죠.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방들의 만류에도 참석을 강행한 것은 시진핑이 북핵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습니다. 현지 관영 언론도 무척 호의적이었죠. 하지만 이듬해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완전히 얼굴을 바꿨습니다. 막말에 가까운 외교적 험담과 함께 가차없는 경제적 보복을 가했습니다. 현지 한국 점포에는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작정한 반품과 환불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정부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습니다. 주중 대사가 공식 항의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중국 시장은 한국 기업들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중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입니다. 남중국해의 조그만 섬들을 놓고 일본 베트남 필리핀과 끊임없이 다투고 있습니다. 대만을 향한 군사적 위협도 여전합니다. 2년 전엔 인도와 전쟁 직전까지 갔죠. 대륙의 넓은 도량을 보여주기는커녕 덩치로 누구든 찍어누르려는 폭주에 가깝습니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공산당이 대(大)중화 민족주의를 권력유지 전략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두 번이나 교환교수를 다녀온 대사님도 잘 아는 내용일 겁니다. 20세기 말 소련 해체와 시장경제 도입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적 토대가 무너지자 새로운 대안으로 패권주의를 들고나온 거죠. 그게 바로 시진핑이 말한 ‘중국몽(中國夢)’의 실체입니다.

이런 나라가 유독 한국에 우호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오히려 위협적인 존재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중국 군용기가 대한해협을 수시로 침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 체제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02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임명한 신의주 특구장관 양빈을 전격 체포, 북한의 개방을 가로막은 적도 있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시진핑은 미·북 핵협상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냉랭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대국의 지도자로서 전 세계가 기이하게 여기는 변방의 앳된 지도자를 만나주기가 내키지 않았겠죠.

장 대사님. 중국이 우리의 최대 시장이고 국력 격차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안보 분야의 전략적 협력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맹목적 친중은 곤란합니다. 굴종외교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한반도를 향한 중국의 공격성을 어떻게 견제해야 할지에 대한 외교적 책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드 보복이든, 미세먼지든, 북핵 문제든 대한민국의 당당한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국민들의 자존심을 살려주십시오. 중국 대사는 국익수호의 최전선입니다.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