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 좋으면 매일 연재, 나쁘면 수정"…미래의 소설, 데이터 전문가가 쓴다

입력 2019-03-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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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웹소설 플랫폼 래디시


[ 김남영 기자 ]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국내 웹소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래디시엔 데이터 과학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유독 많다. 전체 직원의 30% 이상이 데이터를 만지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역할은 창작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의 반응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토리를 결정하는 데 참여한다. ‘소설은 작가만의 영역’이란 고정관념을 깼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데이터 창작’ 기법은 래디시 고유 콘텐츠에 쓰인다. AB테스트(서로 다른 두 시안에 대한 대조군 실험)로 독자 반응을 보는 것은 기본. 실시간으로 유입률과 이탈률을 파악해 이탈이 너무 많으면 스토리 방향을 바꾼다. 출구가 없다고 판단되면 일찌감치 연재를 접기도 한다. 작년 10월 제작된 파일럿 작품 20개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작품은 6개뿐이다.

고유 콘텐츠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작가들도 팀 단위로 관리한다. 영화 또는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이다. PD와 메인작가, 보조작가가 팀을 이뤄 빠른 속도로 소설을 제작한다. 한 사람의 작가론 불가능한 ‘매일 연재’가 가능한 이유다.

독자가 직접 스토리에 개입할 수도 있다. 래디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팔로어(구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라이브(Live)’ 채널을 운영 중이다. 새로운 글이 올라오면 작가와 독자들이 3시간 동안 채팅창에서 소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독자들이 참신한 제안을 하면 이를 스토리에 반영한다.

래디시가 고유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은 수익성이 뛰어나서다. 작가에게 50~70%를 떼줘야 하는 일반 콘텐츠와 달리 지식재산권(IP)과 수익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다. 그렇다고 작가들이 쓴 소설을 취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웹소설 플랫폼의 기본인 다양성을 충족하려면 작가들과의 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한 래디시에서 작품을 연재하는 작가 수는 1700여 명, 작품 수는 6000여 개에 이른다.

래디시는 미국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신종훈 카카오페이지 공동창업자, 수 존슨 전 ABC 부사장 등의 거물을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입소문 덕이었다. 이승윤 래디시 대표는 “넷플릭스처럼 기존 산업의 틀을 깨는 콘텐츠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모든 스토리의 원석이라 할 수 있는 소설엔 이렇다 할 혁신 기업이 없다”며 “긴 안목으로 래디시를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