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패왕별희' 다음달 5일 개막
[ 은정진 기자 ]
한국 전통의 ‘소리’와 중국 경극 ‘이야기’ 그리고 ‘손짓과 동작’이 만나는 새로운 창극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장은 오는 4월 5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창극 ‘패왕별희’(사진)를 공연한다.
이 작품은 25년간 경극을 만든 대만 연출가 우싱궈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1986년 대만당대전기극장을 창설해 경극과 서양 현대극 등 각종 장르를 융합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12일 서울 동대문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서울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우싱궈는 “2년 전 김성녀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찾아와 창극과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며 “경극이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전통이 현대와 융합할 수 있을 때 가치 있다고 생각해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창극을 깨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전 우주적 외침이 담겨있는 판소리 고유의 리듬감을 유지하면서 경극 동작과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해 창극을 풍성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패왕별희는 2000년 전 춘추전국시대 초한 전쟁 당시 초패왕 항우와 한황제 유방의 대립을 담은 중국 대표 경극 레퍼토리다. 2시간 공연 동안 두 영웅이 벌인 5~7년간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 간다. 항우가 유방을 놓쳐 패전의 원인이 된 ‘홍문연’ 장면, 항우를 배신하고 유방 편에 서 그를 위기에 빠뜨린 한신 이야기를 추가했다. 이번 창극 대본을 쓴 대만 극작가 린슈웨이는 “항우가 우희와 이별하고 자결하는 ‘패왕별희’ 장면이 왜 슬픈지 중국 역사를 알지 못하면 느끼기 힘들다고 판단해 두 장면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100% 창극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중국 경극에서 나오는 정형화된 몸짓과 동작들을 창극 배우들이 그대로 따라한다. 배우들은 검보(·사람의 얼굴 같지 않은 모양으로 얼굴색에 따라 각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경극 분장)는 하지 않는다. 중국 영화 ‘와호장룡’으로 제73회 아카데미에서 미술상을 받은 아트디렉터 예진톈이 의상디자인을 맡은 점이 눈길을 끈다. 경극 의상이 지닌 상징성을 표현하면서 창극에 맞춰 더 가볍고 활동적인 소재와 디자인으로 의상을 제작했다.
항우의 정실부인 ‘우희’역은 남성 창극 배우 김준수가 맡았다. 경극 패왕별희에선 배우 메이란팡(매란방)이, 영화 ‘패왕별희’에선 영화배우인 고(故) 장궈룽(장국영)이 맡는 등 그동안 패왕별희 역할 중 ‘우희’는 유독 남성이 맡아왔다. 린슈웨이는 “김준수 소리를 듣고 한국에 이름을 남길 만한 ‘우희’, 한국의 메이란팡이 될 거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은 이자람 감독은 “공연 1장부터 7장까지 소리를 안 하는 순간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창극이지만 대본이 주는 영감이 너무나 벅차 지루하지 않게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