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액의 1.4%에 불과
"VC는 단기 수익 내라고 압박"
도로교통법도 불법으로 낙인
자금 확보·사업기회 찾아 해외行
[ 배태웅 기자 ] “자율주행자동차 기술을 한창 개발하고 있는데 수익부터 내라고 합니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프로센스 관계자의 말이다. 프로센스는 지난해 국토교통부로부터 자율주행차 임시주행면허를 발급받고 세종시 자율주행차 시범사업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자율주행 지게차로 사업 계획을 수정해 자율주행차 관련 사업을 중단했다. 대주주들이 수익을 내라며 사업 전환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가 회사를 떠났다. 프로센스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좋은 투자자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이 자금과 인력 부족, 규제라는 ‘3중고’를 겪고 있다. 일부 업체는 투자자와 인재를 확보하고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투자자금
국내 자율주행 관련 벤처기업은 소프트웨어 개발, 부품 개발 업체 등을 합쳐 30여 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기업 중 19개사가 총 474억원을 투자받았다. 전체 벤처기업에 투자된 3조4249억원 중 1.4%에 불과했다. 헬스케어와 O2O(온·오프라인 연계)산업에 각각 4285억원, 2064억원이 투자된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국토부에서 자율주행 임시면허를 받은 스타트업들의 자금 사정은 더 열악하다. 이 중 소네트는 2017년 설립 이후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다. 저조한 투자 탓에 업체들은 임시면허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들의 자율주행차 누적 운행 거리는 지난해 2만1324㎞였다. 국내 전체 자율주행차 누적 운행거리(약 71만㎞)의 3% 정도다.
이렇다 보니 몇몇 자율주행 스타트업은 해외에서 투자자와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서울대 자율주행차 ‘스누버’ 개발진이 설립한 토르드라이브가 그렇다. 토르드라이브는 2017년 말 미국 실리콘밸리로 본사를 옮겨 현지에서 사업하고 있다.
마스오토도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 2017년 말 카카오벤처스로부터 4억원을 투자받는 데 그치자 지난해 12월 미국 액셀러레이터(창업지원기관)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라이다 센서 제조업체 SOS랩은 지난해 3월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냈다. 국내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에서 68억원을 유치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추가 투자자를 찾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현대모비스로부터 80억원을 투자받은 스트라드비전도 지난해 8월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개설했다. 회사 관계자는 “후속 투자 유치와 인재 채용, 사업 개척 등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단기간에 수익 내라”
국내 VC들이 조성한 펀드들은 단기 투자가 많다. 10년 이상 장기 투자가 필요한 자율주행 스타트업에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게 자율주행 스타트업계 관계자들 얘기다.
일반적으로 정부 모태펀드가 출자한 VC의 벤처펀드들은 투자 기간 4년, 펀드 존속 기간 7년을 설정한다. 모태펀드 운용사인 한국벤처투자가 통상 투자 기간을 4년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기간 제한은 지난해 12월에서야 한국벤처투자 규약에서 삭제됐다.
김홍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이사는 “4년 안에 스타트업이 기술 개발을 끝내고 수익까지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타트업들은 이런 제약이 없는 해외 투자를 선호한다”며 “투자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확 풀어야 투자 건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자율주행 관련 규제가 빠르게 풀리지 않는 것도 투자가 저조한 요인으로 꼽힌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자율주행차가 운전자 없이 도로를 달리면 불법이다. 무인차를 활용한 화물 배송이나 운송 서비스가 나올 수 없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운전자 개념 범위를 소프트웨어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무인 자율주행을 이미 합법화한 미국 독일 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에 비해 더딘 정책이다.
해외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은 규제 완화와 풍족한 자금을 기반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유통업체와 자율주행 배송사업을 하고 있는 미국의 뉴로는 지난달 소프트뱅크로부터 9억4000만달러(약 1조원)를 투자받았다. 기업 가치가 27억달러(약 3조620억원)로 뛰었다. 오로라도 지난달 아마존 등에서 5억3000만달러(약 6012억원)를 유치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