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 0.88명 위기의 한국
일본은 성장세 회복에 출산 늘어
가족 지원형 서비스 확대도 주효"
이지평 < LG경제연구원·상근자문위원 >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작년 4분기 기준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0.8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4분기 출생아 수는 7만4300명으로, 사망자 수 7만5800명보다 적어 사상 처음 인구 감소를 기록했다. 이런 저출산 및 인구 감소는 소비 위축, 성장 활력 저하, 재정 및 사회보장 시스템 악화 등 다방면에서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과 인구 감소를 경험한 일본은 합계출산율이 1990년 1.57명으로 떨어져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면서 이후 2~3년마다 새로운 대책을 발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출산율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15년이 지난 2005년에는 1.26명으로 떨어졌다. 다만 2005년을 바닥으로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해마다 진폭은 있으나 미약한 회복세를 보여 2017년엔 1.43명을 기록했다.
우리 관점에서는 일본의 저출산 정책이 왜, 오랫동안 효과를 거두지 못했는지를 반면교사로 삼는 한편 그나마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는 데 기여한 요인을 검토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우선 일본의 정책 효과가 부진했던 원인으로는 초기에 정치권이나 관료계가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해 종합적인 대응이 늦어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저출산 문제는 국민 의식이나 생활 패턴, 지역사회, 경제 환경, 일하는 방식 등의 변화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며 따라서 새로운 요건에 대응할 수 있는 장기 비전과 이에 맞는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 부처가 저출산 대책이라고 포장하면서 예산 등의 확보에 주력해 가정이나 개인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보육원 부족으로 인해 고전하는 가정이 허다하다. 또 남성 우위 사회를 혁신해 가족친화적인 사회를 구축하겠다는 노력도 상당히 늦어졌다. 저출산의 핵심 원인인 결혼 기피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가정과 일자리를 양립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일본의 출산율이 다소나마 회복한 데에는 일본 경제의 회복과 함께 고용 사정이 호전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그동안 경제 여건 악화와 비정규직 비중 확대로 인해 젊은 층이 결혼하기 어려워진 것이 저출산을 심화시켰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 개선에 주력한 것이 저출산 억제에 일정한 효과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대도시 중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은 아이치현은 도요타자동차가 있고 자동차산업 등의 제조업 기반이 확고해 젊은 층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이 크기 때문에 결혼 및 출산 지원책도 강화할 수 있었다.
최근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젊은 층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상대를 비교 검토하고 선택하는 기회가 줄었기 때문에 공공 중매 전문가 등을 육성하면서 결혼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또 아이치현은 조부모가 젊은 부부의 자녀 양육을 지원하는 비중이 높다. 양육은 친족이나 지역공동체, 국가에서 분담하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을 다방면에서 지원하는 서비스산업 성장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자녀 양육 가정이 급할 때나 부부만의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가족 지원형 서비스산업을 공공 지원책과 함께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결국 강한 경제를 기반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하고 가족의 편의를 제고하는 각종 가족 서비스를 확충해 국민들이 취업, 결혼, 양육, 노후 등에 대해 행복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해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