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거래의 기술

입력 2019-03-08 17:52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굿딜(good deal·좋은 거래)이거나, 그게 아니면 노딜(no deal·협상 결렬)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통상 협상 마무리를 앞두고 그제 한 말이다. 중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어내지 못하면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국의 부담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베트남 하노이의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파격적인 ‘거래의 기술’을 발휘했다. 북한이 구체적이고 완전한 비핵화 단계의 ‘빅딜(big deal)’ 대신 영변 핵시설 동결뿐인 ‘스몰딜(small deal)’을 들고나오자 거래를 아예 접어버렸다. ‘노딜’ 전략은 그동안의 대북 협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전형적인 ‘살라미(단계별 보상) 전술’을 구사해온 북한의 거래 기술은 이에 한참 못 미쳤다. 북한은 정상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한껏 여유를 부렸다. 하노이에 하루 먼저 도착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실무협상 상대인 북한의 김영철을 한 번 더 만나려 했을 때 들은 척도 않고 ‘퇴짜’를 놨다. 그러다가 협상이 결렬되자 허둥지둥 매달렸다.

트럼프는 지난해에도 북한 김정은과 만나기에 앞서 “협상 결과가 좋지 않으면 걸어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 저자이기도 한 그는 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우위”라고 강조했다. 오랜 사업 경험을 통해 ‘어렵고 큰 거래를 성사시키면 보다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빅딜’의 원리도 체득했다.

그가 거래의 지침으로 삼는 4대 원칙은 ‘크게 생각하라,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히라, 지렛대를 사용하라’다. 그는 이 원칙을 북한 핵문제 등 외교정책에 그대로 적용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후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접근법이 가장 좋은 방식이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그동안 ‘살라미’ 아니면 ‘벼랑끝’ 방식으로 협상과 파기, 재협상을 반복하며 핵실험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강력한 ‘거래의 달인’을 만나 ‘벼랑끝’에 몰리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 결정은 공화·민주 양당의 지지를 얻으며 백악관의 대북 강경 기조에 힘을 싣고 있다.

한국 상황은 이와 대조적이다. 정부는 하노이 회담 직전까지 ‘스몰딜은 입구, 빅딜은 출구’ 등 무지갯빛 전망에 빠져 있었다. 회담 결렬 이후에도 냉철한 판단은 보이지 않고 한·미 공조에 엇박자를 노출하고 있다. 숨겨둔 ‘거래의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일까.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