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외 지음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474쪽│1만9800원
[ 서화동 기자 ]
인도주의 의료단체인 스웨덴 국경없는의사회의 공동 창립자인 한스 로슬링(1948~2017)은 통계학 분야 세계적 석학이자 테드(TED) 최고의 스타 강사였다. 그의 14차례 테드 강연은 조회 수 3500만 건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였다. 그의 강의 목표는 하나였다. ‘사실(fact)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무지를 타파하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아들 올라 로슬링, 며느리 안나 로슬링 뢴둔드와 함께 2005년 갭마인더(Gapminder)재단을 설립해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역설했다.
그가 글로벌 은행 본점에 모인 투자담당 매니저들에게 선다형 문제를 냈다. ‘오늘날 세계 만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일까? ①20% ②50% ③80%.’ 은행간부 71명 중 85%가 1번을 꼽았다. 정답은 3번 80%였다.
알 만한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머릿속에 ‘저들’이라는 범주를 만들고 거기에 인류 다수를 집어넣은 결과 이런 엉터리 답이 나왔다고 로슬링은 설명한다. 세계를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로 나누고 후자에 인류 대부분을 집어넣은 결과라는 얘기다. 과거 저소득 국가, 저개발 국가들이 지금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상당히 발전했는데도 옛날 고정관념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로슬링이 아들 며느리와 함께 쓴 《팩트풀니스》는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왜곡된 인식을 초래하는지 풍부한 실례와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사실충실성’으로 번역된 팩트풀니스(factfulness)란 팩트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관점을 뜻한다. 통계학과 보건학의 대가답게 저자는 교육, 인구와 인구 분포, 빈곤, 수명, 사망률, 예방접종률, 환경, 기후 등 다양한 주제의 통계 수치를 근거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다.
로슬링은 유작인 이 책을 집필하기까지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에서 100차례 이상 강연하면서 1만2000여 명에게 13가지 질문을 주고 답하게 했다. 평균 정답률은 16%에 불과했다. 침팬지에게 무작위로 정답을 고르게 했을 때(33%)보다 훨씬 낮았다. 더 뜻밖인 것은 지식 수준이 높을수록 더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책 머리말에 실린 13가지 문제를 풀어보면 실감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 비율은 얼마나 될까’라는 문제의 평균 정답률은 7%에 불과했다. 응답자 다수는 20%라고 추측했지만 정답은 60%다.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이 20%가 안 되는 곳은 아프가니스탄 남수단처럼 예외적인 몇몇 나라뿐이다.
무엇이 이런 오류를 낳는가. 로슬링은 주관적인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는 인간의 10가지 비합리적 본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 10가지는 간극·부정·직선·공포·크기·일반화·운명·단일관점·비난·다급함본능이다.
간극본능이란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이다. 응답자의 다수는 세계 인구의 50%가 저소득 국가에 산다고 답했지만 실제로는 9%만이 저소득 국가에 산다. 세계 인구의 다수는 저소득 국가도 고소득 국가도 아닌, 중간소득 국가에 산다. 따라서 로슬링은 세계를 두 집단으로 나누지 말고 소득 수준에 따라 1~4단계로 구분하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하루 소득 0~2달러인 1단계는 10억 명, 2단계(2~8달러) 30억 명, 3단계(8~32달러) 20억 명, 4단계(32달러 이상)는 10억 명으로 분포된 실체를 볼 수 있다.
부정본능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하는 성향이다. 2016년 태어난 신생아 1억4100만 명 가운데 사망한 아기는 420만 명, 사망률은 3%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하지만 1950년 신생아 9700만 명 중 1440만 명이 사망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개선이다. 1970년대에 비하면 오늘날 재해사망률은 10분의 1로 줄었다.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세계 여성은 90%로 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가 나빠지고 있다고 오해한다.
아프리카는 절대 유럽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운명본능, 특정 집단은 게을러서 안 된다는 식의 일반화본능, 증가 혹은 감소 추세가 직선일 거라는 직선본능, 세상은 위험하다는 공포본능, 사건·사실·수치를 실제보다 부풀리려는 크기본능 등도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따라서 저자는 항상 팩트를 파악하고 다른 통계와 비교해보는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한다.
저자가 사실충실성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세계가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다. 췌장암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집필에 몰두하던 로슬링이 2017년 2월 타계하면서 이 책은 그의 유작이 됐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는 이 책을 읽기 원하는 지난해 미국 대학 졸업생들에게 전자책으로 선물했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편견을 넘어 사실을 밝혀낼 때 인간은 진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 준 책”이라며 추천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