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돈 버는데…" 미세먼지 공습에 금융권 건강 마케팅도 '빨간불'

입력 2019-03-05 14:14
수정 2019-03-05 14:20
# 30대 직장인 문은혜(가명) 씨는 요즘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많이 걸을수록 우대금리가 올라간다는 적금에 가입해 매일 회사까지 걸어 다녔던 문 씨였다. 미세먼지 수치를 보니 오늘도 '매우 나쁨', 도보 대신 버스를 선택한다. 걸음 수를 채우지 못해 적금 금리는 제자리다. 건강과 재테크를 함께 챙기려면 실내 운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문 씨는 집 근처 헬스장을 알아보고 있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연일 한반도를 뒤덮으면서 금융권의 건강 마케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걸음 수에 따라 우대금리와 보험료를 챙겨주며 인기를 끌던 건강증진형 상품들이 뿌연 먼지 속에 걸음을 주춤하는 모습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부산은행은 부산의 갈맷길을 걸으면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걷고 싶은 갈맷길 적금'을 판매하고 있다. 부산은행이 부산시와 '걷기 문화 활성화' 업무협약을 맺은 후 출시한 상품이다.

기본금리 연 1.8%(이하 12개월 기준)에 우대금리를 더한 최고 금리는 연 3.4%다. 갈맷길 탐방 코스 개수에 따라 최대 연 1.0%의 우대금리를 챙길 수 있다.

재테크에 건강을 접목한 상품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됐다.

부산은행 영업점의 한 관계자는 "해안가와 숲길을 따라 야외에서 걸어야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보니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많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고객에게 권유하기가 멋쩍을 때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고금리 상품을 찾는 고객들이 여전히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전에 비해서는 수요가 줄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BNK경남은행과 KEB하나은행도 유사한 상품을 보유 중이다.

경남은행의 '건강한둘레길적금'은 기본금리 연 2.0%에 둘레길을 탐방하면 우대금리 0.30%를 주는 적금 상품이다. 금연 성공 시 0.5%, 헌혈증이나 헬스수강증을 제출하면 0.2%, 건강업종 신용카드 이용 시 0.1% 등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KEB하나은행의 '도전365적금'은 기본금리 연 1.30%에 우대금리를 더한 최고 금리가 연 3.75%다. 걸음 수에 따라 우대금리가 높아지는데 △걸음 수 데이터 200만보 이상~300만보 미만은 연 1.0% △300만보 이상~350만보 미만 연 2.0% △350만보 이상은 연 2.35%를 받을 수 있다.

이들 은행은 건강과 고금리 상품에 대한 고객의 관심이 여전히 높은 만큼 '실내운동'을 추천하며 상품을 홍보 중이다.

걸은 만큼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고 광고했던 보험사들도 희뿌연 하늘에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다.

흥국생명은 걸음 수에 따라 보험료의 최대 10%를 환급해주는 헬스케어 변액상품 '(무)걸으면베리굿 변액종신보험'을 판매 중이다. 보험 가입 고객이 하루 평균 7000보 이상을 걸으면 6개월 동안 납입한 주계약 기본보험료의 7%를 환급해준다. 1만보 이상일 때는 10%를 돌려준다.

AIA생명의 '(무)100세시대 걸작건강보험'은 하루 7500보당 50포인트, 1만2500보당 100포인트를 제공한다. 회사가 제공하는 앱에서 기초 건강검진, 금연 선언 등을 하면 추가로 포인트를 적립하는 방식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이 시중에 많이 출시돼 있지만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며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미세먼지가 많은) 이런 날씨가 계속된다면 걸으면 할인해준다는 것 말고 다른 방향으로 건강 마케팅을 진행해야지 않겠냐"고 말했다.

초미세먼지는 전국을 점령한 상황이다. 이날 수도권과 충청권, 전라권, 강원 영서, 제주 등 총 12개 시·도에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제주에서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