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달래려 카드사 쥐어짠 정부…'결제 불통' 사태로 번지나

입력 2019-03-04 17:15
현대·기아차, 5개 카드사에 가맹계약 해지 통보

수수료율 0.12~0.14%P 올리면 현대차 수백억 추가 부담
"車 이익률 1.4%인데, 수수료 1.9%는 지나쳐" 강력 반발
금융당국 시장 개입으로 갈등 증폭…소비자들만 피해


[ 정지은/강경민 기자 ] 현대·기아자동차가 4일 카드회사 5곳에 가맹계약 해지를 통보하자 금융계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자영업자를 돕겠다며 영세·중소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를 낮추라고 압박하자, 카드사는 손실 보전을 위해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을 추진했다. 대형 가맹점으로선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 맞은 격이다. 대형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가 인상되면 결국 대형 가맹점이 중소 가맹점을 지원하는 꼴이다. 정부가 할 일을 민간 대기업으로 하여금 하라고 하니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금융계는 분석했다. 이번 사태는 결국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강력 반발한 현대·기아차

현대·기아차가 가맹계약 해지를 통보한 카드사는 신한·삼성·KB국민·롯데·하나 등 5곳이다. 현대자동차에선 오는 10일부터, 기아자동차에선 11일부터 해당 5개 카드로 결제할 수 없다. 수수료 인상을 강행하지 않은 비씨, 현대, 우리, NH농협카드 등은 계속 이용할 수 있다.

현대차는 카드사의 수수료 인상 통보에 ‘수긍할 수 없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현대차가 카드사의 요구대로 현재 1.80% 수준인 수수료율을 0.12~0.14%포인트 올릴 경우 추가 부담액은 연간 270억~31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상에 대한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카드사들이 무분별하게 수수료율을 올리면 수백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해 완성차 업체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카드사와 영업이익률을 비교하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신용카드 업계 1위인 신한카드의 지난해 총자산이익률(ROA)은 1.88%로, 자동차업계 1위인 현대차보다 높다는 설명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2.5%로 2010년 새로운 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자동차부문의 영업이익률만 따지면 1.4%를 기록했다.

또 현대차 측은 사실상 가맹 수수료의 원가인 적격비용의 토대가 되는 조달금리가 하락세인 데다 연체채권비율이 감소해 인상 요인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한카드의 2015~2017년 평균 조달금리는 연 2.80%로 2012~2014년(4.29%)보다 1.49%포인트 감소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카드사 뒤 금융위 “사후 점검”

카드사들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큰손’인 현대·기아차의 가맹계약 해지는 당장 점유율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어서다. 현대·기아차의 국내 매출 약 32조원(2017년 기준) 중 카드 사용 비중은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약 22조5000억원이 연간 카드 사용액이다.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의 경우 연간 결제 규모가 현대차는 2조원, 기아차는 1조1000억원에 달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처럼 덩치가 큰 대형 가맹점과 계약을 해지할 경우 타격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하지만 물러서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주된 이유는 이미 쪼그라든 수수료 수입에 있다. 지난 1월 말 우대 가맹점 범위를 확대하면서 줄어드는 카드사의 연간 수수료 수입은 5800억원이다. 2만3000여 개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를 최대 0.3%포인트 인상하면 연간 5000억원의 수입을 늘릴 수 있다.

금융당국이 두 눈을 부릅뜨고 물러서지 말라고 나서는 것도 카드사들의 어려움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와 카드사 간 갈등은 민간 기업 간의 계약이어서 금융당국이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형 가맹점이 부당하게 수수료 인하를 요구했는지에 대해선 사후에 집중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업계는 이달 말까지 수수료 인상에 이의를 제기한 대형 가맹점과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애꿎은 소비자만 피해를 입게 됐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소비자 피해가 더 크다. 신용카드를 통해 ‘오토캐시백’ 등으로 결제 부담을 줄이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정지은/강경민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