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허원순 기자 ]
[사설] '보 철거' 밀어붙이는 정부, 가뭄 극복 장치부터 밝혀야
환경부가 금강과 영산강의 보 5곳 중 3곳을 해체하고 2곳은 상시 개방하겠다고 발표해 지역 주민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발표 직후부터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지만, 보 인근 주민의 걱정과 반대는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주민들에게 5개 보는 생활용수뿐 아니라 농업용수를 제공하는 주요 수원(水源)이다. 성급한 보 해체가 자칫 인위적인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보 철거 계획은 지난해 11월에 구성된 ‘4대강 조사·평가 전문위원회 및 기획위원회’의 결론에 따른 것이다. 수십 년씩 관찰·연구해도 부족할 수 있는 치수와 수자원의 유지 관리를 이렇게 석 달 만에 결론 낼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더구나 이 위원회의 민간 인사 중에서는 드러내놓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해온 이들이 적지 않아 “애초 보 철거를 전제한 전문위원회가 아니었나” 하는 비판도 적지 않다.
보 철거에 따른 부작용이나 문제점, 비용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경제성 문제를 포함해 과학적·실증적·객관적 공론이 제대로 이뤄지길 바란다. 정치논리 배제가 큰 관건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항구적인 가뭄극복책이다. 경제발전에 따라 생활·산업 용수의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우리나라는 어느덧 만성 물부족 국가가 됐다. 지난해 여름의 최악 폭염, 가뭄 같은 기상 이변도 잦아졌다. 필요한 만큼의 수자원을 양적으로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정 수준의 강물은 주변 지천과 지하수 수위까지 높여 농업용수 걱정을 덜어준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가뭄 폭염 때마다 농민들이 날벼락 맞게 할 수는 없다.
수질을 따지다가 가뭄 재난을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수질 악화도 보 때문인지, 급증한 오염요인 탓인지, 계절적 현상인지 장기간에 걸쳐 따져볼 게 많다. 향후 한강과 낙동강의 11개 보 조사에서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보 해체 문제는 오는 6월 출범하는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그전에 오류가 바로잡히고, 근본적 가뭄대책도 마련되길 바란다. 부족하면 수입도 못 하는 게 수자원이다. <한국경제신문 2월25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수자원은 양적·질적으로 모두 중요
막대한 국민세금 투입된 보 철거는
타당성 종합적 검토 뒤에 결정돼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공사 전부터 시작해 완공된 뒤에까지 논란이 반복됐다. 정치 이슈가 아니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진영 논리가 강하게 반영된 아젠다도 드물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감사원의 강도 높은 감사도 있었지만 논란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 복구’를 내세운 선거 공약을 담았고, 환경부가 지난해부터 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전국 16개 보 가운데 먼저 금강과 영산강 보 5곳에 대한 정부 방침이 일차적으로 나왔다. 한강과 낙동강의 11개 보에 대한 처리 방침도 2019년 말까지 정해진다. 금강과 영산강 보 건설에 3830억원이 투입됐다. 7년 만에 다시 뜯어내는 비용도 1667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 결정이 불러온 논란 가운데 하나인 경제성 문제는 이런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보의 관리 비용과 유지했을 때의 부차적 효용까지 종합적으로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농민들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 반발이 크다는 사실이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등으로 이례적인 가뭄과 폭염이 일상화되어 가는 판에 적정 수준의 수자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매우 현실적 문제제기다. 수질도 강물이 있을 때 따질 얘기지, 강이 말라버리면 지천과 지하수까지 함께 고갈되는 데 수질 논쟁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보 해체에 따른 논란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수질 개선, 가뭄 및 홍수 대책 같은 원래의 목적을 몇년 만에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가 하는 게 출발점이다. 전문 조사단이 발족된 지 3개월 만에, 그것도 겨울 갈수기에 내린 결론이 과학적 실증적 실측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결정이었느냐는 문제제기다. 강물논란이 독립적 정책 이슈가 되지 못한 채 ‘전 정권 적폐 청산’이라는 큰 슬로건 속의 하부 과제로 전락한 측면은 없는가 하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는 사실상 결론이 미리 난 상태에서 합리적 객관적 검증이 어려웠을 수 있다는 불신이 깔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강물과 지하수 등 수자원은 장기 관점에서 관리하고 확보해야 한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다 중요하다. 수돗물만 해도 처리과정 등의 원가로 보면 수입품이나 마찬가지다. 강수량은 여름철에 집중되는 데다 그나마도 해마다 들쑥날쑥이다. 반면 경제성장에 따라 물소비량은 급격히 늘어난다. 한국의 수돗물은 독일 등 유럽국에 비해 반의반 값인데다, 1인당 사용량은 몇 배나 된다. 지속가능하기가 쉽지 않은 물 과소비국이 된 것이다. 보 해체에 앞서 이런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든 수량은 확보하면서 수질도 개선시켜 나가는 ‘기술적 보완’ 방법은 없을까. 미세먼지의 원인 파악과 대책마련이 그렇듯, 수자원 관리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차분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보를 해체한 뒤에 물이 부족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최소한 이에 대한 대책이라도 세우면서 실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보 해체에 대해 ‘문명의 파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판이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