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아/김채연 기자 ]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북한 핵폐기 로드맵 마련과 남북한 경제협력 재개 등 그동안 기대됐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향후 상당 기간 미국과 북한이 재협상을 벌이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양측이 어떤 생각을 갖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는 긍정론도 있다. 외교·북한 전문가들의 상반된 견해를 들어 봤다.
"트럼프, 한반도 문제 당분간 뒷전…美·北 길게는 1~2년 기다릴 수도"
윤덕민 前 국립외교원장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비핵화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로드맵 도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원장은 1991년 국립외교원 조교수를 시작으로 27년 동안 국립외교원에 몸담았다. 2013년 5월 국립외교원장으로 취임한 뒤 2017년 5월 퇴임해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로 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회담 결렬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실무회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한 달도 채 못했다. 아무리 톱다운 외교라 해도 실무 라인의 촘촘한 준비 없인 제대로 된 딜을 내놓기 어렵다.”
▶일정 기간 냉각 국면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2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란 핵합의만 해도 실무협상에 수년이 걸렸고, 합의 도출 직전엔 협상팀이 한 달 동안 합숙하지 않았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나.
“당분간 한반도 문제는 정치적 카드로 고려하지 않을 것 같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는데 이번에 실패했으니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서도 이번 회담은 뼈아픈 실패일 텐데.
“심경이 복잡할 거다. 북한은 이번 회담이 성공하리라고 자신했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부터 회담 분위기를 띄울 이유가 없다.”
▶서로에게 기대가 컸던 것 같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 사실이다. 북한은 귀중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북한의 협상라인에 변화가 있을지.
“‘최고지도자에겐 오류가 없다’는 원칙이 생명인 북한 체제에서 돌이킬 수 없는 망신을 당했으니 충격이 대단할 거다. 아마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포함해서 대미 실무회담을 맡은 통일전선부 라인이 문책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북이 내세운 조건의 간극이 이토록 컸던 까닭은 무엇인가.
“서로를 오판했다. 특히 북한이 미국을 잘못 생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통해 뭔가 얻어내고 싶어 한다는 것만을 생각해서 너무 큰 욕심을 부렸다. 남북한 경협 허락만 얻고자 했어도 결렬까지 가진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미국도 북한의 의도를 잘못 판단한 것 같다.
“북한이 내세우는 ‘셀프 비핵화’ 수준이 이 정도로 낮다고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북한에서 영변 핵시설만 폐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깊이 분석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성과가 없진 않았다.
“회담 결렬을 통해 상호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있게 됐다. 특히 미국은 앞으로 북한과 협상하기 더 쉬워질 거다.”
▶북한이 대북제재의 효과를 결국 인정했기 때문인가.
“맞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을 보고 확신했다. 북한이 얼마나 간절하게 대북제재 완화를 원하는지 말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회담장에 섰는지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재자론’을 제시해 온 우리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아주 힘들어졌다. 이번 회담의 성과를 토대로 남북 경협을 되살리려 하지 않았나. 남북 경협과 교류 논의도 모두 중단될 거다.”
▶우리 정부의 실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낙관론만 펼치면서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미·북 회담이 그처럼 중요하다면 대북, 대미 특사도 적극적으로 파견했어야 한다. 한·미, 남북 간 소통이 잘 됐다면 회담이 결렬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 역시 예상할 수 있었을 거다.”
▶앞으로 대북·대미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까.
“우린 핵문제를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아주 작다. 핵문제 해결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비핵화 로드맵을 외면한 평화 논의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양국, 빅딜 위해 스몰딜 포기한 것…다자협의체로 전환해 판 이어갈 듯"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의 실패에 대해 “북·미가 ‘빅딜’을 위해 ‘스몰딜’을 안 하는 방향으로 정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양측 간 쟁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실무 협의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미 정상 모두 정치적 생명을 걸고 임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의 판을 깨기는 쉽지 않다”며 “다만 이번에 ‘톱다운 방식’의 단점이 드러나 이제는 우리 정부를 포함해 다자 협의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30여 년간 북한 연구에 집중해온 고 교수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과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과 3월 1일 하노이 현지에서 이뤄졌다.
▶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났다.
“기본적인 합의는 됐는데, 두 정상 간 제재 해제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양측이 회담에서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냈고, 대화를 유지하겠다고 했으니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북한이 요구한 5건의 제재 해제는 어떤 의미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인민 생활 향상을 내걸고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세웠는데, 제재가 풀리지 않아 근본적인 경제 개선이 어려웠다. 그만큼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북한으로선 제재 해제가 1순위고,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는 부수적 조치다.”
▶북한이 다시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나.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점은 다행이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거나,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천명하면 판은 깨졌을 것이다.”
▶왜 판을 깨지 않은 걸까.
“수령 체제에서 수령이 직접 나서서 협상을 했는데 일이 잘 안 된다고 하는 건 리더십에 엄청난 상처다. 무엇보다 북한은 경제발전 우선 노선을 택했고 어떻게든 제재를 푸는 게 급선무다.”
▶비핵화 의지는 진정성이 있나.
“북한 전략은 언제나 조건부 비핵화다. 체제 안전 보장, 군사적 위협을 풀어주면 비핵화하겠다는 것이다. 핵 프로그램을 완성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비핵화를 하더라도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이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길’을 언급했다.
“미국이 앞으로 비핵화 협상에 관심이 없다면 예고한 대로 새 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런데 두 정상이 웃으면서 헤어졌고,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합의를 안 한 것이기 때문에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계산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치부를 폭로한 자신의 전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의회 청문회 때문에 정치적으로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스몰딜’을 하면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당장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재개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차라리 노딜을 택한 것이다.”
▶협상은 언제쯤 재개될까.
“생각보다는 냉각기가 길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번에 톱다운 방식의 장단점이 다 드러났다. 톱다운 방식은 잘되면 좋지만 원래는 극약처방이다. 우리 정부를 포함해 다자 위주의 실무 협상을 통해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정부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정부의 신한반도체제 구상은 이번 회담이 잘될 것을 전제한 것이다.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를 천명한 것은 한반도 평화협력 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봐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커질 것이다. 다만 이제는 비핵화 문제에도 관여하면서 다자 협상 구도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으로선 지엽적인 문제다. 금강산 관광은 애초부터 개별 의제로 다뤄지긴 힘들었고, 비핵화에 따르는 인센티브 포괄 패키지 안에 있었다. 제재만 풀리면 자동적으로 다 풀린다.”
하노이=김채연/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