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친구"라더니 협상판 접은 트럼프…결렬 직전까지 '스몰딜' 유력했는데

입력 2019-02-28 20:15
트럼프-김정은 핵담판 결렬

코언 청문회가 영향 미쳤나


[ 이상은 기자 ]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를 찾을 때부터 이런 결과를 준비하고 있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의 치부를 들춘 게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코언은 청문회에서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한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그를 ‘인종주의자’ ‘사기꾼’으로 지칭하며 등에 칼을 꽂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간 여유를 갖고 해야 하는데 이런 회담 도중에 청문회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잘못된 발언이며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조셉 윤 전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의 드라마(코언 청문회)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핵 협상의 판을 깬 뒤 트럼프 대통령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봤다. 대부분 미 언론들의 톱뉴스가 코언 청문회에서 북핵 정상회담 결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코언 청문회는 1일에도 열린다.

미국 민주당은 이번 회담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밀리고 있다”며 영변 핵 폐기와 제재 완화를 바꾸는 ‘스몰딜’을 비판해왔다. 이 때문에 코언 청문회를 계기로 더 나빠진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한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레 ‘빅딜’을 추진하다가 판이 깨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스몰딜을 할 바에야 노딜로 매듭짓는 게 ‘북핵 문제 해결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정상회담을 준비 없이 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은 여러 면에서 그런 규칙에서 벗어났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회담 순간이지만 실무진은 상당 기간에 걸쳐 협상하고 조율해서 회담 결과물을 도출한다. 정상들은 그 결과를 형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밀고 당기기’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조차도 실무진이 제시한 몇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틀간 일정 동안 다섯 번 만날 계획이었다. 정상회담을 다섯 번씩이나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돌발 변수가 늘어나고 협상 시나리오를 짜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모두 강한 성격이어서 오히려 여러 차례 회동을 통해 ‘끝장을 보자’는 의미로 해석됐다.

하지만 회담이 결렬로 마무리되면서 ‘톱다운 의사결정’에 익숙한 두 사람의 스타일이 판이 깨진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보 없이 ‘강 대 강’으로 부딪치면서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이런 결과를 준비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다섯 번의 회동을 준비한 것 자체가 돌발 변수를 활용해 회담을 결렬로 끝내고자 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술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레 ‘영변 핵시설 외 다른 주요 핵시설’을 언급해 김정은을 놀라게 한 것도 의도적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북한은 물론 무역협상 중인 중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이번 회담을 활용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