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핵담판 결렬
전문가들 진단
[ 전예진/김소현/이인혁 기자 ]
베트남 하노이에서 28일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업무 오찬이 취소되기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점에서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어렵게 두 번째 정상회담까지 왔는데 돌발 변수가 발생해 모든 것을 되돌린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차 회담이 김정은의 승리였다면 2차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트럼프의 계산된 노림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회담 결렬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한 배경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공동성명 이후 가져갈 이해득실을 치밀하게 판단한 끝에 결렬이 서로에게 득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회담 중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왔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업무 오찬은 협상이 잘돼서 분위기가 좋을 때 가능한 것인데 이를 취소했다는 것은 작전을 짜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서로 다시 검토해보자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비리 문제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파기나 결렬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계속해서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도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나쁜 합의보다는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합의가 아니라면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협의 가능성을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에 놀아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합의를 깬 것은 트럼프 대통령일 가능성이 크다”며 “김정은이 어떻게든 합의문을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천식 우석대 초빙교수(전 통일부 차관)는 “북한이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을 완전히 오판했다”며 “북한은 은연중에 과거 살라미 전술에만 매달렸고 언제든 뒤집어버릴 수 있는 미국을 얕잡아봤다”고 말했다.
당분간 미·북관계 찬바람
일부 전문가들은 미·북 회담 결렬이 예고됐던 것이라고 지적한다. 싱가포르 1차 회담 때부터 미국이 원하는 북한의 비핵화 수준과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제재 완화 조치를 두고 양측이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1차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성명에 명문화하지 못해 비판받았다. 당시 북한이 협상 승리자로 부각된 상황에서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방안을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북한은 애초부터 교집합이 없었다”며 “북한은 처음부터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 등 경제제재 해제를 위해 회담에 나온 것인데 미국은 비핵화가 끝나기 전에는 이를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협상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사찰받고 검증하더라도 이미 핵무기를 개발한 상황이어서 미·북 협상에서 손해볼 것이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악화된 국내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회담을 결렬시킨 것은 앞으로 북한에 어정쩡하게 끌려가지 않고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북 관계에 대해서는 당분간 냉전기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주도로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됐지만 톱다운 방식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정상회담은 실무진이 95%를 합의해놓고 5%를 정상이 채워야 하는데 정반대로 하다 보니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모두 서로에 대한 탐색은 끝나 시들해졌기 때문에 후속 회담이 연내 열리긴 쉽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톱다운 방식은 실무회담이 안될 때 위에서 푸는 것인데 북·미는 반대로 해왔기에 더욱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정하자면 북한이 다시 벼랑 끝 전술로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의 비핵화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 교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재진입 기술을 과시했던 김정은은 당분간 물밑에서 정교하게 군사핵 능력을 키울 것”이라며 “완전히 미국 손을 놓지는 않으면서 1.5트랙에서 신년사에서 말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미·북관계가 찬바람이 불고 소강상태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은 “앞으로 3차 정상회담은 주고받는 것이 더욱 크지 않은 이상 어려워질 것”이라며 “성추문 등 방어에 급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영변 핵과 ‘+α’ 그 이상을 제시하지 않는 한 북핵 회담에 흥미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로 가거나 아니면 경제를 포기하고 핵보유국으로 가거나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며 “하노이에서는 그 중간의 길을 갈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젠 미국과 북한 모두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고 말했다.
전예진/김소현/이인혁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