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公正法 개정안의 '갈라파고스 규제'

입력 2019-02-28 17:36
'경제력 집중' 사전규제 강화하는 公正法
글로벌 시대 우리 기업만 족쇄 채우는 격
경제력 남용 막되 성장의 길 차단은 안돼

황인학 <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쟁에 관한 제도와 정책은 필수다. 경쟁은 소비자 복지를 증진하고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또 경쟁은 창의와 혁신의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고, 그럼으로써 산업 발전과 국민경제 성장을 뒷받침한다.

한국에서 경쟁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법제도는 공정거래법이다. 동법은 1980년 12월 말 처음 제정됐고 그때부터 ‘경쟁 촉진’ 외에 ‘경제력집중 방지’를 별도 목적으로 내세운 점에서 특이하다. 여기서 특이하다 함은 선진법제에 유례가 없는, ‘한국식 예외주의’라는 의미인 동시에 경제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선진법제에서는 경제력의 남용을 규제할 뿐, 집중을 사전 규제하진 않는다. 경제력집중이 독과점의 폐해를 유발하지 않는 한 우리와 달리 규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경제력집중 방지 정책은 경쟁 제한의 역기능을 초래하고 생산적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크다. 이런 이유로 공정거래법상의 한국식 예외주의, 또는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진 제도 고립주의는 1987년 동법 제1차 개정에서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구체화된 이후 끊임없는 논란거리였다.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 국가 간 제도경쟁시대에 한국식 예외주의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때마침 정부는 38년 만에 처음으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추진 중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산업화 시대의 규제 틀로는 변화된 경제여건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 현상을 효과적으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21세기 변화된 경제 환경을 반영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추진’한다는 게 정부가 밝힌 취지다.

공정거래법 개정 취지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작년 11월 말 정부가 확정해 국회에 발의한 개정안은 21세기 변화된 환경을 반영한다는 취지에 역행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경제력집중에 관해서는 출자구조·계열거래·의결권 제한 등 기존 규제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국내외 경쟁 여건이 바뀌고 기업집단의 본질과 기능, 경제력집중과 관련해 그동안 새로운 발견과 지식이 늘었지만 정부 개정안은 1980~1990년대의 인식과 규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유하자면 현상유지 편향의 소산이자, 기존의 규제 식탁을 그대로 두고 규제 메뉴와 양념을 늘린 게 이번 개정안의 특징이며 한계다.

기왕에 법률을 전부 개정한다면 동법 제1조 경제력집중 방지의 합목적성, 시대 적합성부터 따져보면 좋았을 것이다. 경제력 규제의 목적을 집중 방지에서 남용 방지로 전환했으면 바람직했을 것이다. 한국은 2016년 기준으로 유럽연합(EU), 미국을 비롯한 52개국과 15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음으로써 경제활동 영토가 세계 총생산의 77%로 확장됐다. 인터넷을 통한 해외 직구 사례에서 보듯이 오늘날의 경쟁 환경은 공정거래법 제정 당시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딴판이다. 상품은 물론 자본, 기업, 국적까지 무시로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다. 이런 환경에서 제도 고립주의를 고집하며 우리 기업에만 규제의 족쇄를 채우는 것은 제도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제학 이론 관점에서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전 규제 위주의 경제력 억제시책은 효율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을 독점하고 사업 규모·범위를 확장하려는 열망과 노력은 기업가정신의 요체이자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를 막는 것은 발전의 동기를 사전 봉쇄하려는 것과 같다. 국민경제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집중의 사전 방지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경제력의 남용을 막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많은 이가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은, 우리 헌법은 공정거래법과 달리 제119조 2항에서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중 방지와 남용 방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 중차대한 사안을 검토조차 않은 정부 개정안은 결함이 심각하다. 이 사실 하나만 놓고 봐도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