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비핵화 의미'부터 조율해야…핵 폐기, 길게는 반세기 걸릴 수도"

입력 2019-02-27 17:59
4단계 비핵화 어떻게…


[ 이미아 기자 ] “2차 미·북 정상회담의 최대 핵심 의제는 비핵화의 의미와 관련 용어를 조율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해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비핵화 관련 로드맵과 상응조치를 제시하겠다는 게 이번 회담의 목표지만, 실제로는 미·북이 서로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공통된 정의만 도출해도 진정한 ‘빅딜’이란 뜻을 담고 있다.

비핵화를 둘러싸고 양측이 30년 가까이 갈등을 빚는 근본적 이유는 실제 핵폐기 절차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적용되는 용어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미국과 북한이 각각 내세우는 핵폐기 대상 범위의 간극도 너무나 크다.

핵시설 폐기 절차는 크게 4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폐쇄(shutdown)’다. 핵시설의 가동 중단 및 이를 확인하기 위한 봉인과 사찰·검증 조치를 뜻한다. 두 번째는 ‘불능화(disablement)’다. 핵무기를 분해해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사태로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폐기(dismantlement)’다. 핵 관련 시설을 모두 파괴, 제거해 핵프로그램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해체(decommissioning)’다. 시설 폐기 후 작업자와 일반인의 안전을 확보하고, 방사성 오염물질을 해당 지역에서 완전히 제거한 뒤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것까지 모두 가리킨다. 북한이 해당 용어들을 그동안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사찰을 거부하면서 국제사회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1994년 제네바 핵합의 등 과거 북핵 관련 합의는 폐쇄 단계까지도 제대로 가지 못한 채 파기됐다. 우선 사찰·검증 대상 핵무기 규모가 객관적으로 파악이 안 돼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30년 동안 근무한 안준호 전 IAEA 사찰관은 “현재로선 북한의 핵 시설과 핵실험 규모는 IAEA에서조차 제대로 입증된 자료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비핵화’란 용어의 의미도 국가마다 달라서 이번 회담에서 관련 합의가 나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전했다. 학계에선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무기를 적게는 20개, 많게는 60여 개까지 예상하고 있다.

미국은 핵무기와 핵물질, 관련 연구인력 등 핵과 연관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와 핵시설, 핵물질의 자체 폐기를 고집한다. 안진수 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은 “미국과 북한이 희망하는 핵폐기 순서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부품 파괴, 핵물질의 국외 반출부터 하길 원한다”며 “북한의 경우 내부에 있는 영변 원자로 해체부터 먼저 한 뒤 미국이 원하는 조치를 제일 마지막에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북핵 사찰과 폐기 비용 문제도 거론된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반세기 정도 걸려야 비로소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