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하노이선언'
(1) 평화선언 (2) 연락사무소 개설 (3) 영변핵 봉인 (4) 유해 송환
'영변+α' 계속 진통…트럼프·김정은의 결단에 넘겨져
靑 "스몰딜이라고 성공 못한 것 아니다" 기대치 낮춰
[ 박동휘/박재원 기자 ]
‘빅딜이냐, 스몰딜이냐.’ 한반도 핵 운명이 오늘(28일) 갈린다. ‘하노이 2차 핵담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채울 마지막 공란만 남겨뒀다. 두 정상은 ‘하노이선언’에 서명하기 전까지 힘겨루기를 할 전망이다. △평화선언 △연락사무소 개설 △영변 핵 봉인 △유해송환 등 의제협상팀이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기본 4개 항에 더할 ‘+α’를 집어넣기 위한 싸움이다.
미·북 2개씩 ‘행동’
27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는 지난 21~25일 약 16시간의 의제협상에서 기본 4개 항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2개씩의 행동을 이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조치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포괄적이고 검증 가능한 봉인(CVC)을 선언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 인터넷 매체인 복스는 이날 “영변 핵시설에서 핵물질 생산을 중단한다는 데 양측이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비건 대표의 조언그룹으로 알려진 ‘카네기팀’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북한 핵무기와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하게 동결하는 CVC 개념을 제안했다. 비건 대표도 지난달 31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북한의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해체 및 파괴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군 유해도 추가로 송환된다. 이를 위해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 대가로 미국은 ‘김씨 세습’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선물’을 제시할 전망이다. ‘한국전쟁 종식을 목표로’ 등의 문구가 포함된 평화선언이 그것이다. 평양 내 미국 연락사무소 개설은 불가침에 대한 보증이자 북한 비핵화 조치의 감시센터 개설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아직 못 채운 하노이선언문
4개 항의 기본 골격은 정해졌지만 ‘2·28 하노이선언’의 성패를 좌우할 의제들은 여전히 공란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27일 만찬을 포함해 약 다섯 번의 ‘담판’을 벌인다. 이 힘겨루기 과정에서 ‘스몰딜’이냐 ‘빅딜’이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나온 결의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 수입 제한도 포함돼 있다. 이와 함께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을 제재 대상에서 면제해달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이날 일제히 남북한 교류협력의 발전을 저해하는 법과 제도의 개선을 우리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국이 제재 완화를 선언해야 빅딜의 충족요건으로 평가되는 조항에 합의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 완화가 없다면 영변 외 우라늄 농축시설 봉인, 비핵화 로드맵 작성 등 ‘+α’도 없다는 얘기다. 조선신보는 이날 “미국이 움직이는 만큼만 움직인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스몰딜이라고 해서 성공적이지 않은 회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 스몰딜과 빅딜이라는 개념을 무 자르듯이 자를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긴 했지만 하노이 회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청와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스몰딜로 끝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북핵 폐기 대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없애는 ‘낮은 수준’의 타협으로 결론 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커지는 하노이 회담 회의론
미 언론들은 하노이 회담에 대해 ‘김정은의 판정승’으로 끝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이날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주는 나쁜 거래를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복스 역시 “(기본 4개 항 합의로 끝나는 경우) 김 위원장에게는 대단한 승리고, 미국에는 꼭 그렇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 외에 얻은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금기시되던 대북제재 해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데다 핵보유와 경제발전을 병행할 수 있는 시간도 벌게 된다. 4차에 걸친 북·중 정상회담으로 중국이란 ‘뒷배’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도 김정은이 얻은 성과로 평가된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여전한 의문은 북핵에 큰 변화가 왔는가인데 지금까지의 대답은 아니오”라며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반드시 답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동휘/박재원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