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70~80% 찬성 예상
대통령 5년 중임·총리직 신설
'공산당 독재' 큰 틀은 유지
[ 김형규/정연일 기자 ]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안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했다. 카스트로 형제의 59년 집권기가 막을 내린 뒤 쿠바 정부는 심해지는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일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로 방침을 정했다. 개정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면 쿠바는 1976년 이후 43년 만에 사유재산제를 인정하는 헌법을 갖는다. 다만 새 헌법에서도 공산당 1당 통치와 계획경제 기조는 유지한다.
쿠바 선거위원회는 24일(현지시간) 사유재산 인정과 개인 사업활동 허용, 외국인 투자 역할 인정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개헌안에는 대통령(국가평의회 의장) 임기를 5년 중임제로 제한하고 권력 분산을 위해 총리직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현행 헌법은 국유 재산과 협동 재산, 농민 재산권만 인정하고 있다.
의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권력회는 지난해 7월 개정 헌법 초안을 내놓은 뒤 다양한 협의를 거쳐 12월에 최종안을 가결했다. 최종안 가결까지 70만 건의 제안이 의회에 제출되는 등 헌법 개정 열기가 뜨거웠다.
외신들은 “43년 만에 선택권을 가지게 된 쿠바 시민들이 새로운 변화를 반기고 있다”고 전했다. 개표 전부터 유권자의 70~80%가 개헌안에 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민투표 결과는 25일 오후(한국시간 26일 오전)에 발표될 예정이다.
쿠바의 개헌은 냉전시대에 제정돼 43년간 유지된 현재 헌법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베네수엘라로부터의 원유 공급이 줄어들면서 가중되고 있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왔다. 쿠바 정부는 진작부터 대대적인 찬성 권유 캠페인을 벌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외국인 투자 유치가 쿠바 경제 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쿠바는 2014년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30%에서 15%로 감면하면서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투자자들은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은 탓에 투자를 꺼려왔다.
사유재산이 인정되면 식당·운송·관광업 등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의 법적 지위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쿠바 자영업자는 2010년 15만 명에서 현재 60만 명으로 증가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쿠바에선 1962년 도입된 배급제가 유지되고 있다. 국민은 굶주림만 면할 정도의 식량 배급을 받으며 살아갈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하다. 한편에선 관리 부실로 창고에 쌓인 식량이 썩은 채 버려지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쿠바 경제는 사회주의 우방국인 베네수엘라가 싼값에 제공하던 원유 공급이 줄면서 더 타격을 받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쿠바에 공급한 원유는 2015년 하루 평균 11만 배럴에서 최근 4만~5만 배럴로 감소했다. CNN은 “쿠바가 예전처럼 사회주의 동맹국으로부터 값싼 원유를 얻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도 심각한 경제난으로 파산 상태다.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큰 폭의 쿠바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권력 기반이 약한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국가평의회 의장)이 지지세를 굳히기 위한 방편으로 국민투표를 했다는 비판도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쿠바 국민투표는 현 정권의 폭력과 독재를 숨기기 위한 방편”이라고 했다.
김형규/정연일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