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에 '카나브 PM' 변신한 김승호 "올해 처방액 1000억 이끌겠다"

입력 2019-02-25 17:34
명함 돌리며 보령제약 신약 홍보

국산 新藥 첫 처방액 1천억 도전
내달 2일 카나브 8주년 행사



[ 전예진 기자 ] “안녕하세요. 보령제약 ‘카나브’ 프로덕트 매니저(PM)입니다.”

지난달 제약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신년회 자리. 최연장자 어르신이 일일이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자 웃음이 터졌다. 이 노신사는 “카나브에 대해 궁금한 점은 제게 문의해달라”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명함에는 ‘세계적인 대표 고혈압 신약 카나브 PM 김승호’라고 적혀있었다.

카나브 홍보대사 자처한 김승호 회장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87·사진)이 PM으로 변신했다. 제약사의 꽃이 영업이라면, PM은 꽃이 필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하는 뿌리에 비유할 수 있다. 제품 개발·기획 단계에서 시장조사는 물론 출시 이후에는 마케팅, 홍보, 영업 등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까지 책임지기 때문이다. PM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김 회장이 직책 강등을 자처하면서 카나브 구원투수로 나선 이유다.

김 회장은 올 1월 카나브 총괄 PM(Executive PM)으로 임명됐다. 명함도 새로 팠다. ‘얼굴이 명함’이었던 김 회장이 만나는 사람마다 새 명함을 주며 카나브를 알리니 웬만한 영업사원들보다 홍보 효과가 뛰어나다는 게 보령제약 관계자의 말이다.

해외에서는 주력 제품의 PM을 최고경영자(CEO)가 맡기도 하지만 국내 제약사 중에선 김 회장이 처음이다. 국내 제약사 PM의 평균 나이는 40대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대부분 전문경영인 체제인 것을 고려하면 국내외를 통틀어 최고령 PM인 셈이다. 김 회장이 직접 PM으로 나선 것은 올해 카나브패밀리(카나브, 듀카브, 투베로)의 연간 처방액 1000억원 돌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카나브패밀리는 지난해 월처방액 60억원을 넘어섰고 연간 668억원의 처방 실적을 기록했다. 김 회장은 “국산 신약 중 최초로 연처방액 1000억원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며 “올해는 목표 달성에 성공해 국산 신약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말했다.

지구 12바퀴 돌며 해외 개척

김 회장은 올해 카나브패밀리의 해외 진출을 위해 윗선에서 고공 지원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김 회장은 2010년 9월 카나브가 허가를 받은 이후 전 세계 각국으로 50만㎞를 비행했다. 지구 12바퀴를 돌고도 남는 거리다. 브라질, 멕시코, 중동, 러시아 등 카나브 수출 계약이 있는 곳이면 24시간 비행도 마다하지 않고 날아갔다. 김 회장의 열정 덕분에 회사 분위기도 바뀌었다. 이한웅 카나브 마케팅팀장은 “회장님이 PM으로 온 뒤로 직원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시야가 넓어졌다”며 “결단력이 있고 추진력이 강해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다음달 2일 카나브 발매 8주년 행사도 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준비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 회장은 오는 4월 준공하는 예산 신공장을 통해 카나브 생산 규모를 세 배 이상 확대하고 글로벌 신약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김 회장은 “2023년 특허 만료 이후를 대비해 염 변경 약물을 개발하고 적응증을 추가해 차별화할 계획”이라며 “현재 4개인 복합제에 더해 3종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제약이 나와도 카나브패밀리의 처방 데이터가 쌓여있어 오리지널 약물로서 경쟁 우위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회장의 목표는 카나브패밀리를 연매출 3000억원 규모의 블록버스터로 키우는 것이다. 그는 “해외 시장은 3년이 지나야 자리를 잡고 본궤도에 오르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라며 “9개사가 경쟁하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시장에서 5년 내 시장점유율 30% 달성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