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부글부글 청춘들

입력 2019-02-24 17:51
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한국 정치판에선 어떤 이슈도 대개 열흘을 못 간다. 새롭고 더 센 이슈가 튀어나와 종전 이슈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의 목포 투기 논란이 야당의 ‘5·18 발언’에 묻히더니, 이번엔 여당 의원의 ‘20대 교육 부족’ 설화(舌禍)로 시끄럽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대 남성 국정지지율 하락에 대해 “보수정권에서 교육을 잘못 받은 탓”(21일)이라고 했다가 거센 반발을 초래했다. 하루 만에 “젊은 세대를 겨냥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비슷한 발언이 또 나와 불에 기름을 부었다.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반공교육으로 적대감을 심어준 탓”이란 홍익표 의원의 발언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여권 인사들의 ‘20대 폄훼’ 발언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작년 말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고 게임도 안 하고 공부해서 (남자들이) 모든 면에서 불리하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김현철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여기 앉아서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마라. 아세안에 가보면 ‘해피 조선’”이라고 했다가 결국 물러났다.

이쯤 되면 여권 인사들이 20대를 어떻게 보는지 짐작할 만하다. 야당 시절엔 ‘분노하라’며 청년세대의 상실감을 자극하고 이용하다가 집권 후 지지율이 떨어지자 엉뚱한 ‘설교’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단순 실언으로 넘기기엔 일관성이 있어, 암묵적인 ‘집단사고’가 형성된 듯하다.

가뜩이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20대는 부글부글 끓는다. 인터넷 게시판마다 “저는 못 배운 20대 남성입니다. 멍멍 꿀꿀” “투표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같은 댓글로 도배돼 있다. 20대는 반공교육 때문에 종북을 혐오하는 게 아니다. 자라면서 봐온 북한의 현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청년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청년실업, 젠더 갈등, 양심적 병역 거부 논란도 모자라 정부가 자꾸 기름을 붓고 있어서다. 여성가족부의 ‘걸그룹 외모 간섭’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불법 음란·도박 등 약 900개 사이트 접속을 막은 ‘보안접속(https) 차단’ 사태가 인터넷 검열 논란으로 번진 게 심상치 않다.

배고픈 것보다 연결이 끊기는 걸 더 두려워하는 게 요즘 세대다. 수십 건의 청와대 청원에다 시위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부인해도 ‘내 관심사와 일거수일투족을 국가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공포로 와닿은 탓이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39%→32%)뿐 아니라 20대 여성 지지율이 13%포인트(63%→50%)나 떨어진 것도 그 여파로 해석된다.

20대를 잘못 읽으면 대가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야권에선 호재를 만난 듯 ‘꼰대 망언’이라고 비난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다. 청년들 눈에는 죄다 ‘남 탓하고 설교하는 꼰대’로 비치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