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덫' 헤어나지 못하면 車산업 공멸
조합원들 스스로 '정치노조' 변화시킬 때
장창민 산업부 차장
[ 장창민 기자 ]
작년 이맘때였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에 한국GM 회생을 위한 돈을 분담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본지 보도를 통해 터져나왔다. 한국GM 사태의 서막이었다. 얼마 후 ‘본게임’이 이어졌다. GM은 군산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하고 정부에 협상을 제안했다. 자동차업계와 지역사회, 정치권은 이후 석 달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산은이 한국GM에 8000억원 가까운 돈을 넣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사태를 봉합하기 전까지 그랬다.
후유증은 컸다. 군산공장과 협력업체 등에 있던 1만여 명의 근로자가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GM은 아직도 국내 판매량이 반토막 난 상태다. 부평 1·2공장과 창원공장이 ‘셧다운’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부품사들은 말라 죽기 직전이다. 그런데도 노사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엄중했던 한국GM 사태를 돌이켜보면, 아이러니컬한 대목이 하나 있다. 한국GM 노조의 강경 투쟁과 GM 본사의 무책임한 태도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경쟁사였던 르노삼성자동차가 늘 비교 대상으로 거론됐다. 한국GM 노조가 사장실을 점거하고 쇠파이프 난동을 벌인 반면, 르노삼성 노조는 2015~2017년 무파업을 이어간 덕에 완성차업계의 ‘모범생’으로 불렸다. 르노삼성은 노사 화합을 바탕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그랬던 르노삼성이 불과 1년 만에 한국GM을 닮아가고 있다. 르노삼성 노조는 작년 10월부터 기본급 10만667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하고 있다. “파업을 계속하면 신차를 주지 않겠다”는 프랑스 르노그룹 본사의 경고까지 나왔지만, 노조는 되레 파업 강도를 높이고 있다. 20일에도 부분파업을 했다. 노조의 강경 투쟁과 본사의 물량 축소 방침이 맞물리며 법정관리(기업 회생절차) 문턱까지 내몰렸던 한국GM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고질적 ‘노조 리스크’의 ‘원조’는 따로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다. 두 회사 노조는 반값 연봉 완성차 공장인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지난달 31일 첫걸음을 떼자마자 전면적 대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광주형 일자리 철회를 위한 ‘3년 투쟁’에 나서겠다는 중장기 로드맵(?)까지 내놨다. 현대차 노조가 올해도 ‘깃발’을 들면 8년 연속 파업이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네 차례를 제외하고는 32년간 매년 파업을 벌였다. 영업이익이 반토막 난 작년에도 쉬지 않았다. 기아차 노조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동차회사들은 여전히 노조 눈치만 보고 있다. 단체협약 규정에 따라 신차를 생산하거나 공장별로 생산 물량을 조정하려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할 정도로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노조의 습관성 파업을 묵인하며 뒷짐만 지고 있다. ‘노조 천국’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아직 ‘정점’에 다다르지 않았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언제 공장을 멈출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 투자은행(IB) 사이에선 이대로 가면 5년 안에 현대차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제 노조가 스스로 바뀌는 건 ‘난망(難望)’이다. 자동차 공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투표권을 쥔 일반 조합원들이 바꿔나가야 할 때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나서 ‘정치꾼’들의 놀이터가 된 노조 집행부를 변화시켜야 할 때다. ‘노조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삶의 터전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