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ㅣ '자전차왕 엄복동' 애국 소재·배우 열연·130억 제작비, 모두 아깝다

입력 2019-02-20 09:05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가수 뿐 아니라 배우로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열정부자' 정지훈의 말이다.

"영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 한 순수한 청년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배우에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으로 첫 제작에 나선 이범수는 이렇게 강조했다.

두 배우의 말은 모두 '자전차왕 엄복동'에 반영이 됐다. 정지훈을 비롯해 이시언, 정석원 등 배우들은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굴렸고,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민족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에 몰두했다. 그럼에도 '자전차왕 엄복동'은 의미와 완성도 모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제목 그대로 1920년대 자전차왕으로 불린 엄복동(정지훈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동시에 애국단이라는 단체를 통해 폭탄과 테러로 자주 독립을 실현하려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도 보여줬다.

애국단을 후원했던 일미상회 황재호(이범수 분) 사장은 "총과 칼이 아닌 다른 걸로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면서 자전거 선수 발굴에 나섰고, 그때 그의 눈에 나타난 게 엄복동이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물배달을 하다가 자전거를 도둑맞고, 서울로 상경한 엄복동은 "우승하면 100원을 준다"는 광고를 보고 자전차 선수가 됐다. 타고난 체격과 운동신경으로 단숨에 동료 선수들을 앞질렀던 엄복동은 처음 출전한 자전차 대회부터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황재호를 비웃고, 무시하던 애국단 단원들도 그의 뜻을 이해하게 됐고, 엄복동을 응원했다. 애국단에서 활동하던 김형신(강소라 분) 역시 처음엔 엄복동을 오해했지만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탄탄한 서사만 쌓였다면 충분히 감동과 의미를 전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전개 과정은 헐거웠고, 우연은 남발됐다. 지속적으로 풀리지않는 의문이 제기됐다. 많은 캐릭터가 나오고, 끊임없이 사건이 발생했지만 중구난방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여기에 시선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고문 묘사, 총격신들이 이어졌다. 유혈이 낭자하고, 남자 배우의 전라 노출까지 등장했다. 마약 투약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정석원은 중요 부위만 가린채 총격에 가담한다.

엽기적이고 광기어린 일본 제국주의를 표현했다기엔 다소 과하고, 세련되지 못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배우들의 열연이 자극적인 장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됐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엄복동의 경기를 보러왔던 사람들이 엄복동을 지키겠다고 자전차 트랙 안으로 들어와 애국가를 열창하는 부분이다. 일본에 항거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민중들의 마음을 표현했다기엔 작위적인 연출이었다.

'국뽕'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장면에 대해 김유성 감독은 "국뽕, 신파 등의 얘기도 나오는데, 그게 무엇인지, 그걸 왜 지양해야 하는지 또 하나의 얘깃거리가 됐으면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100억 원의 순제작비가 투입됐다. 마케팅비용을 포함하면 130억 원 이상이 되리란 관측이다. 김유성 감독이 영화 촬영 후반부에 하차했을 당시 "큰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에 부담을 느꼈다"고 제작사이자 투자 배급을 담당했던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가 밝히기도 했다.

실존 인물 엄복동은 일제 강점기 민중의 영웅에서 말년엔 자전거 도둑으로 몰리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성 감독은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다시 한 번 영화로 담아보고 싶다"며 '엄복동' 시즌 2에 대한 바람을 드러냈다. '자전차왕 엄복동2'는 만들어질 수 있을까. 관객들의 선택을 지켜볼 일이다.

12세 관람가. 런닝타임 118분. 오는 27일 개봉.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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