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회장 "김경수 지사 '재판 불복' 공세는 우리 사회의 약속을 깨자는 얘기"

입력 2019-02-19 17:13
한경 인터뷰 - 25일 취임하는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마음에 안든다고 판결에 반발
국회의원이 판사 공격한다면 어떻게 나라를 이어갈 수 있나

'사법농단' 사태가 벌어진 것은 자만한 소수 엘리트 법관들의
'사법 우월주의'가 근본 원인…대다수 법관들은 되레 피해자

수술하려면 의사자격증 필요하듯
세무사·변리사 등 전문자격사가 소송하려면 변호사 자격증 따야

변호사-전문자격사 직역다툼…'시장에서 경쟁'하는 게 해법


[ 박종서/이인혁 기자 ]
변호사업계는 내우외환에 휩싸였다.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는 사법부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휘청이는 데다 변리사 세무사 등 전문자격사들이 일반 소송 대리권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한 해 1500명 정도인 변호사 배출 인원을 지금보다 크게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이찬희 변호사는 19일 “어떤 문제든 우리 공동체를 유지해주는 원칙과 약속의 틀 안에서 풀어나갈 것이며 상대방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을 여당 등이 강력히 반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지켜온 약속을 깨버리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 변호사를 서울 청담동 법무법인 정률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오는 25일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다.

▶사법부가 위기라고 합니다.

“사법농단 사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무리하게 상고법원을 설치하려 한 게 직접적인 화근이 됐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소수 엘리트 법관들의 사법우월주의에 있다고 봅니다. 세상을 다 안다고 자만한 결과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던 거 같아요. 스스로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이기만 한 결과가 지금의 혼란을 초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법관들의 엘리트 의식은 어느 정도입니까.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만 재판을 해보면 판사들로부터 가당치도 않은 조언을 듣곤 합니다. 젊은 판사가 인생을 다 아는 것처럼 나이 많은 변호사나 피고인을 훈계해요. 제가 (너무 기분이 나빠서)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판사도 있어요. 어떤 변호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발판으로 법원의 콧대를 납작하게 하자는 말까지 합니다. 얼마나 서러웠으면 그런 소리까지 하겠어요.”

▶그래서 사법부를 불신합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어떻게 보면 대다수 법관이 사법농단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법관이 3000여 명인데 전체적으로는 청렴하고 소신과 원칙에 따라 판결한다고 확신합니다. 다만 100% 그렇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는 거죠. 사법농단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런 일들을 하는 소수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사법부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환부를 정확하게 도려내야겠죠. 수술을 한다고 여기저기 다 째보는 식은 곤란합니다. 지금은 검찰 수사를 비판하기보다는 차분히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민 정서도 아직은 검찰이 사법부를 의도적으로 물 먹이거나 스스로의 권력 강화에 이용하려 한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아요. 변호사업계도 법원을 도와줘야 합니다. 사실 변호사들은 돈만 밝힌다고 욕을 많이 먹었고 사회적 지탄도 꽤 받았습니다. 지금은 꾸준한 자정 노력으로 상당히 정화됐다고 생각해요. 먼저 ‘매를 맞아 본’ 변호사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법원에 힘을 실어줘야죠.”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구속되자 여당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약속을 깨버리겠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지켜온 약속 말이죠. 재판도 사람이 하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합니다. 불만이 생길 수 있어요. 우리는 그런 불만을 3심제로 해결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대법원의 결정은 어쨌든 받아들이자고요. 아무리 억울해도 시스템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재판불복’ 운운하며 판사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나라를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상당히 실망했나 봅니다.

“법원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지요. 분쟁이 생겼을 때 승복할 수 있는 기구가 무너지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사회가 될 겁니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보이는 행동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봅니다. 자기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다고 사법체계 전부를 부정하는 식으로 비쳐요. 사법부 불신을 부채질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어요.”

▶김 지사도 판결 직후에 사법부를 비판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대표이자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사람이 그런 발언(“재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특수관계라는 점이 이번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주변의 우려가 있었다. 그 우려가 재판 결과를 통해 현실로 드러났다”)을 했다는 게 참…. 저는 김 지사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고 참신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증거도 없이 추측에 의해서 판사를 비난했어요. 김 지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보호받고 있어요. 그런 김 지사가 추측만으로 다른 사람(판사)의 죄를 드러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법관 탄핵 움직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탄핵해야 할 잘못을 했다면 해야지요. 잘못한 사람들이 법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게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하지만 탄핵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에는 분명하게 반대합니다. 또한 당리당략이나 국회의원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양심을 저버리는 탄핵을 추진한다면 헌법재판소에서 가로막히게 되고 후폭풍을 맞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요.”

▶변호사들이 전문자격사들과 치열하게 직역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원칙과 약속의 문제로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은 일반 소송 대리권을 변호사에게만 줍니다. 물론 세무사나 변리사 법무사 등도 어떤 면에서는 변호사만큼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까짓 소송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소송 대리는 전문자격사들이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마치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수술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수술을 맡기지 않는 것과 같아요. 수술을 하려면 의사 자격증을 따야 하는 것처럼 소송을 하려면 변호사 자격을 갖춰야죠.”

▶갈등의 근본적인 배경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는 과거에 사법시험 제도를 통해 소수 엘리트 법률인을 양성하고 이들이 국가 전반을 이끌도록 했습니다. 변호사가 적다 보니 일반 국민은 만족스러운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소수의 변호사가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니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각종 전문자격사제도를 마련한 거죠. 하지만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서 해마다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습니다. 변호사들이 마땅히 할 수 있지만 인력 부족으로 안 하거나 못 하던 일까지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죠.”

▶해법은 무엇입니까.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세무사 변리사 등 ‘변호사 유사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변호사들이 예전에 안 하던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침범한다고 반발할 게 아니라 변호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고유 영역을 지키는 데 힘을 써야겠죠. 국민은 그런 경쟁을 지켜보고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세무는 역시 세무사가 제일이네, 특허업무는 변리사에게 맡기는 게 가장 유리하네’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지금의 직역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변호사시험 합격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소송 대리를 너무 쉽게 보는 시각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핵심입니다. 법률서비스 시장에 변호사가 과다하게 배출되면 부작용이 심각해집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대규모로 나온다고 했을 때를 가정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대한변협 회장은 주요 인물 추천권이 있습니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특별검사 등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제왕적 변협회장’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만 정말 오해입니다. 추천권과 임명권은 하늘과 땅 차이지요. 주요 자리를 천거할 때는 무조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합리적으로 진행해나가겠습니다.”


■이찬희는 누구인가…

50대 젊은 변협 회장…친화력·소통능력 뛰어나
"민변과 한변 양쪽에서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당선자(54·사법연수원 30기)는 50대 의 젊은 변협 회장이다. 그는 친화력과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시절 산하 각종 위원회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30% 이상 위촉하며 로스쿨과 사법고시 출신 변호사 간 화합을 이끌어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한변(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양쪽에서 모두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이 회장 당선자는 일찌감치 ‘이찬희에게 맞설 적수가 없다’는 대세론을 형성하며 출마했다. 선거 과정에선 우여곡절이 많았다. 변협 선거 사상 최초로 ‘선거 중지 가처분’이 제기됐다. 그가 서울변회 회장 임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사퇴하고 변협 선거에 나온 것이 위법하다는 지적이었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변협 선거가 직선제로 바뀐 이후 처음으로 단독 후보가 나오면서 투표율 저조 등으로 선거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통상 변협 선거 투표율은 50%대에 그쳤는데 관련 규정상 단수 후보일 경우 전체 변호사 회원의 3분의 1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상을 뒤엎고 그는 당선 커트라인(7076표)을 훨씬 넘는 9322표의 압도적 찬성표를 얻었다.

그는 서울변회를 이끌면서 공익 변호사를 위한 ‘홈리스 법률지원 매뉴얼’을 발간했다. 개인파산·개인회생 사건 관련 브로커를 근절하기 위해 서울회생법원과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약력

△1965년 충남 천안 출생
△용문고·연세대 법대 졸업
△연세대 법무대학원 졸업(법학 박사)
△1998년 사법시험 합격(40회)
△2001년 사법연수원 수료(30기)
△서울지방변호사회 재무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재무이사 사무총장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박종서/이인혁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