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전세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집값 하락세가 길어지자 매매보다 전세를 택하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역전세 확산을 우려해 전세대출 증가세를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주택 공급물량 증가와 전세가 하락이 맞물리면서 전세대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은행계정) 잔액은 54조84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보다 1조900억원 늘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5조9300억원(40.9%)이 증가했다.
전세 거래량도 늘었다. 1월 전국의 전세 거래량은 10만2464건으로 전월 대비 21.1%, 작년보다 18.9% 증가했다. 반면 주택 매매는 감소했다. 1월 주택 매매 거래량은 5만286건으로 전월보다 9.6%, 전년 동기 대비 28.5% 줄었다.
9·13 대책 등 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매매시장이 침체되고, 전세시장은 활황을 띠는 모습이다.
전세가와 매매가격이 함께 떨어지고 있는 점도 전세시대 부활에 한몫하고 있다. 앞으로 매매가가 더 떨어질 것이란 불안감과 기대감에 매매 대신 전세를 택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114의 자료를 보면 이달 셋째 주까지(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13주 연속, 전세가는 10주 연속 하락했다. 서울 매매·전세가가 10주 연속 동반 하락한 것은 2012년 이후 7년 만이다. 신도시와 경기·인천의 아파트값도 5주 연속 약세를 나타냈다. 전세가도 내리고 있다.
공급물량 확대도 전세자금대출 증가 요인으로 지목된다. 공급물량 증가는 매매·전세가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전세시장 안정화를 이끈다.
올해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급물량이 쏟아질 전망이다.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38만 가구. 서울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4만3000만가구 입주가 예정돼 있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경기 성남·하남시 등 서울 동남권 일대 입주 물량만 2만2000가구에 달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당분간 전세 선호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연말까지 관망세가 이어지는데다 공급물량 증가와 전세가 하락으로 세입자 우위 현상이 유지될 것이란 분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 하락기에는 전세를 안전자산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산가격 하락으로부터 방어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라며 "최소한 올해 하반기까지는 부동산 시장의 관망세가 이어지고, 전세 시장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전세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역전세, 깡통전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사항으로 꼽힌다. 갱신 시기 전세가가 2년 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역전세는 지방을 필두로 서울 일부 지역까지 발생 중이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역전세난이 심화되면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역전세, 깡통전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세입자는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