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비밀 메신저

입력 2019-02-18 17:51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가족과 비밀을 주고받을 때 알파벳을 몇 자씩 뒤로 물려 읽는 암호 메시지를 활용했다. A를 D로 읽는 식이었다. 그는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기 전 ‘암살자를 조심하라’는 긴급 암호문을 받았다. 그러나 암살자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전설적인 여성 스파이 마타하리는 특이한 악보를 암호로 사용했다. 일정한 형태의 음표에 알파벳을 하나씩 대응시킨 방식이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악보 같지만 실제로 연주하면 음악과 거리가 먼 비밀 메시지였다. 이런 암호 통신은 1, 2차 세계대전 때까지 광범위하게 쓰였다. 휴대전화가 생긴 이후 한동안은 ‘대포폰(차명 전화)’이 유행했다. 전화기를 남의 명의로 여러 대 개통해 들고다니며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획기적인 변화는 2013년 암호화 메신저인 ‘텔레그램’이 개발되면서 일어났다. 러시아가 개발한 이 메신저에서는 대화 내용이 일정 시간 후 자동으로 삭제된다. 서버를 조사해도 확인할 수 없다. 2016년 서울 강남경찰서 간부들이 수사 보안을 위해 이 메신저로 한꺼번에 갈아타면서 ‘텔레그램 망명’이 화제를 모았다.

얼마 전에는 청와대 특별감찰반이 텔레그램을 통해 수시로 업무지시와 보고를 했다는 사실이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로 알려졌다.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사건 수사에서는 텔레그램 화면을 다른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 증거로 채택됐다. 드루킹 사건 관련자들은 미국 정보기술업체가 개발한 ‘시그널’ 메신저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그널은 텔레그램보다 암호화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라쿠텐 계열의 ‘바이버’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들 메신저가 알려지면서 일반 사용자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텔레그램의 월간 이용자는 지난해 1월 117만9070명에서 올 1월 173만9668명으로 47.5% 늘었다. 다른 메신저는 깔지 않고 텔레그램만 쓰는 사람은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시그널 이용자도 1만8158명에서 3만5594명으로 96% 불어났다.

최근에는 국내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이 인기를 끌고 있다. 통화가 데이터로 이뤄져 기록이 남지 않고 녹음도 어렵기 때문이다. 법조계와 정치권뿐만 아니라 공무원, 일반인까지 이를 활용하고 있다. 딱히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쓴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이 ‘영원한 비밀’도 없다. 예부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입에서 나온 말이나 손 끝을 떠난 문자는 어디서든 덫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남에게 감출 ‘비밀’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좋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