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오세스 < 英 맨그룹 맨GLG 신흥시장 채권전략 책임자 >
[ 이현일 기자 ]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달 30일 기준금리 추가 인상 계획을 보류했다. 향후 정책에 대해선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겠다’고 했다. Fed가 보유한 채권을 팔거나 재매입하지 않는 방법으로 시중의 통화량을 줄이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의 속도 역시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성명이 발표된 직후 일각에선 Fed 이사회가 미 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를 뒷받침하기로 작심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왔다. 구조적으로 기업 부도율을 낮은 수준에 억눌러 놓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고금리 회사채와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을 계속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화정책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정부 재정적자는 중앙은행의 손을 넘어서는 장기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Fed는 통화정책에서 재정은 고려하지 않고 인플레이션과 고용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을 강조했다.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 중단
미국의 각종 지표가 Fed가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정당화할 만한 근거는 별로 없다. Fed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한다 해도 자산 규모 축소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뚜렷한 침체 징후가 없음에도 Fed가 작년 12월 FOMC로부터 불과 6주 만에 금리 인상에 관한 톤을 완전히 바꾼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세 가지 정도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첫째는 시장 참여자들이 아직 모르는 매우 나쁘고, 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이 도사리고 있다는 가설이다. Fed가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금리를 인하하거나 채권 매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미리 태도를 유연하게 바꿨다는 얘기다.
두 번째 가설은 현재 진행 중인 중국과의 통상협상이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Fed가 비둘기파로 변신해 금리 인상을 그만두겠다고 하고, 셧다운 사태도 끝난다면 미 행정부가 중국을 압박하는 데 더 힘이 실릴 수 있다. 미 정부의 이런 의중이 Fed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쳤다는 가정이다. 그간 시장 참여자들은 이 협상이 실제 관세를 높이는 데 이르지 못하고 기한이 연장돼 중국이 시간을 더 버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마지막은 작년 12월 뉴욕증시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Fed가 당황했다는 가설이다. 지난달 발언은 Fed가 무리하게 기준금리를 인상할 뜻은 없다는 점을 강조해 시장을 안심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테이퍼링은 계속된다
투자자들은 두 번째 가설인 중국과의 협상 때문에 Fed가 정책을 바꿨고, 미국의 호황 국면은 계속된다고 믿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맨그룹은 세 번째 가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앞서 파월 의장은 목표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지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향후 근원물가 상승률이 연 2%(현재 연 1.9%)를 초과한다면 Fed는 다시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통화량을 목표치까지 되돌리는 데 필요한 긴축은 더 클 것이며 세계 경기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
지난 통화정책 결정 회의에서 드러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어떤 가설을 세우더라도 Fed 이사회가 미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재정지출 규모는 더욱 커져 국채 발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래에 더욱 혹독한 긴축을 해야 할지 모른다.
정리=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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