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국민,무상복지·최저임금 인상에 환호하다가…

입력 2019-02-18 09:00
Cover Story - 포퓰리즘으로 무너진 베네수엘라

살인적 물가 급등 등 경제 파탄 맞자 현 정부에 등돌려


[ 이상은 기자 ]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길거리의 개, 고양이, 비둘기를 잡아먹고 쓰레기통을 뒤진다는 보도가 나온 지도 3년째다. 지난 4일 영국 BBC가 정리한 베네수엘라 현황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치즈 등 유제품을 구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종전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먹는 것으로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던 구황식물 카사바를 먹는 이들이 급증했다. 10명 중 9명은 매일 먹을 음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820만 명은 하루에 두 끼 이하만 먹는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웃나라 콜롬비아로 넘어갔지만,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해 매춘이나 범죄에 빠져들고 있다.

경제 파탄 난 베네수엘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015년 2월 “차베스의 망령이 베네수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2년 전에 세상을 뜬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1999년 2월~2013년 3월 집권)이 남긴 유산이 베네수엘라를 궁핍의 늪에 밀어넣었다는 것이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집권 뒤 포퓰리즘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여럿 도입했다. 서민에게 무상으로, 혹은 아주 낮은 값으로 주거·의료·교육 등 복지를 제공했다. 서민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며 밀가루 식용유 세면도구 등 생활필수품 가격도 통제했다. 재원은 풍부한 석유였다. 이런 정책은 처음엔 국민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차베스 모델이 인기를 끌 정도였다. 고유가가 이어질 때는 환상도 지속됐다. 문제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이듬해인 2014년부터 생겼다. 유가가 급격히 하락하면서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경제성이 낮은 유전이 하나둘 문을 닫자 석유 생산량(산유량)도 1990년대 말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상당수 기업을 국유화한 결과 효율성이 떨어졌고 가격 통제에 시달린 업체들은 경쟁력 있는 물건을 충분히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외채를 돌려줄 여력이 점차 줄었고 외환위기도 찾아왔다. 물가는 살인적으로 뛰었다. 베네수엘라 국회가 집계한 작년 물가 상승률은 130만%다. 19일마다 2배씩 뛴 결과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1000만%에 달할 것이란 전망(IMF 예상)이 나온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경제개혁 조치를 발표하면서 볼리바르를 10만 대 1로 액면절하하고 최저임금을 3000% 인상했다. 지난 1월에도 미국의 경제제재를 이유로 최저임금을 300% 올리는 등 수시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가 살인적으로 폭등하면서 최저임금으로는 수도 카라카스에서 달걀 한 판이나 쇠고기 1㎏가량을 살 수 있을 정도다. 마두로 정부는 아예 각종 경제지표 발표를 중단한 상태다.

국제사회에서도 고립

이런 상황에서도 야권 지도자를 가택연금하는 등 탄압하던 마두로 대통령은 작년 5월 재선을 치러 당선됐다. 선거 과정은 공정하지 못했다. 야당 지도자가 전부 불참하도록 만든 상황에서 나온 결과여서다. 지난 1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이유다. 볼리비아를 제외한 남미 국가 대부분과 미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은 과이도 의장을 정식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현재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터키 등 일부 국가뿐이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이름으로 예금된 금이나 달러를 꺼낼 권리도 상당 부분 과이도 의장이 넘겨 받았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PDVSA의 자산을 동결하고 송금 금지 등 제재를 가해 마두로 정권의 돈줄을 묶었다.

마두로 대통령은 거세게 저항하는 중이다. 내정 간섭이며 쿠데타라는 게 그의 얘기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6일 베네수엘라 우레나와 콜롬비아 쿠쿠타를 연결하는 티엔디타스 다리를 유조차와 화물 컨테이너로 틀어막았다. 국제사회가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에게 보내는 구호 물품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원조 물품 전달은 미국의 군사 개입을 위장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조가 틀어막히자 베네수엘라에선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마두로 퇴진을 외쳤다.

마두로 대통령의 불안에 근거가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장에서 ‘병력 5000명을 콜롬비아로’라고 적은 노트를 들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미국이 선을 넘을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국민에 의해서든, 국제사회에 의해서든 마두로 대통령은 고립된 상태다.

■NIE 포인트

베네수엘라 차베스 전 대통령과 마두로 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들을 정리해보자.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왜 차베스에 열광했을지를 플라톤의 ‘중우정치(衆愚政治)’와 연관지어 토론해보자. 베네수엘라 경제난 해법도 생각해보자.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