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
올해 유료방송시장 대형화 바람
가입자 761만명·기업가치 4兆…거대 유료방송 사업자 탄생
SKB "콘텐츠 투자 본격화"
합병법인, 재무적투자자 유치 계획…추가 M&A 위한 실탄 확보할 듯
딜라이브 인수전도 덩달아 후끈
[ 이동훈/유창재 기자 ] 올 들어 인터넷TV(IPTV)·케이블TV·위성방송 등을 아우르는 유료방송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IPTV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가 지난 14일 케이블TV 1위 CJ헬로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IPTV 2위 SK브로드밴드와 케이블TV 2위 티브로드가 합병을 결정했다. 채권단이 매각을 추진 중인 딜라이브(옛 씨앤앰) 인수전의 열기도 달아오를 전망이다.
지난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유료방송 업체 간 합종연횡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자 수년간 지지부진하던 업계 재편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평가다. 방송과 통신을 결합한 거대 미디어 사업자가 속속 출현하면서 유료방송업계에 대형화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SK텔레콤, 규모의 경제 확보
SK텔레콤은 2008년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뒤 SK브로드밴드로 사명을 바꾸고 2009년 IPTV 서비스(브랜드 BTV)에 나섰다. 업계 1위 KT(올레TV, KT스카이라이프)를 따라잡기 위해 2015년 CJ헬로비전(현 CJ헬로) 인수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수를 불허하면서 거래가 무산됐다.
당시 공정위 결정으로 유료방송업계 인수합병(M&A)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SK는 물밑에서 계속 기회를 엿봤다. 가입자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선 대형 케이블TV 업체 인수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티브로드 인수를 위한 태광그룹과의 물밑 협상은 지난해부터 시작됐지만 속도는 지지부진했다. 김상조 위원장이 지난달 2016년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 기업결합심사 불허 판정과 관련해 ‘과거와는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고 언급하면서 교착상태에 있던 논의에 물꼬가 트였다. 곧이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발표 여파로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로 SK브로드밴드 점유율이 경쟁사에 비해 크게 뒤처지게 됐다”며 “가입자 격차가 콘텐츠 품질 격차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케이블TV 인수에 속도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가입자 수 761만 명, 기업가치 4조원에 달하는 거대 유료방송 사업자가 탄생한다. 합병법인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뒤 콘텐츠 투자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달 4일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서 “스케일을 키워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 유료방송 M&A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송·통신 융합 선택한 태광그룹
태광그룹이 1997년 설립한 케이블TV 자회사 티브로드는 2014년 사모펀드(PEF) IMM PE 컨소시엄으로부터 2000억원을 투자받았다. 태광그룹은 당시 IMM PE에 2017년까지 티브로드를 증시에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태광그룹이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20.13%)을 되사오는 조건이었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IMM PE가 태광그룹이 보유한 티브로드 지분까지 끌어다 팔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도 붙었다.
IPO가 성사되지 않자 IMM PE는 지난해 초 태광그룹에 콜옵션 행사 의사를 물었다. 당시 업계는 태광그룹이 콜옵션 행사보다 제3자 매각을 선택할 것으로 봤다. 케이블TV가 IPTV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독자 생존이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태광그룹은 예상을 깨고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되사오겠다고 IMM PE에 통보했다. 방송 사업을 포기할 뜻이 없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간 합병은 ‘독자생존은 어렵다’는 현실론과 ‘방송통신 융합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태광그룹 의지가 결합된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태광그룹은 방송과 통신 사업을 두루 갖춘 대형 유료방송 사업자의 2대 주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마지막 매물, 딜라이브 인수전 후끈
SK그룹은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를 합병한 뒤 합병법인에 재무적투자자(FI)를 유치해 자본을 확충할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M&A를 위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SK그룹이 LG유플러스에 빼앗긴 2위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케이블TV업계 3위인 딜라이브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딜라이브 가입자 수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206만 명이다.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법인이 인수하면 가입자 수가 967만 명까지 불어난다. 시장점유율 30.28%로 KT-KT스카이라이프(시장점유율 30.86%)를 바짝 추격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LG유플러스도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그동안 딜라이브 인수에 공을 들여온 KT의 행보가 관심이다. KT는 지난해 6월 일몰된 유료방송 점유율 합산규제(33% 이하 유지)의 부활 논의를 지켜보며 딜라이브 인수전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말 회의를 열고 규제의 재도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동훈/유창재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