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현실화 가능성 높아진 노딜 브렉시트 Q&A
통관절차 복잡…화물 운송비↑…영국공항 일시 마비 우려도
유로화 파생상품청산소 등 유럽 대륙으로 기능 이동할 듯
英 10년간 1인당 GDP 8.7% 감소…정부, 대규모 감세 등 준비 나서
[ 이상은 기자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불과 3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별도 합의가 없으면 오는 3월 29일 밤 12시에 브렉시트는 진행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줄곧 ‘소프트 브렉시트’를 추진해왔다. 브렉시트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EU와 협상을 지속했다. 작년 10월 합의를 이뤘지만 영국 하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영국은 일부 영역의 과도기적 조치만 겨우 얻어낸 채 3월 말부터 EU와 남남이 된다. 브렉시트 방안 중 가장 충격이 클 ‘노딜(no-deal)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노딜 브렉시트의 충격을 영국 정부와 EU 집행위원회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문답 형태로 짚어봤다.
(1) 거주자 지위는 어떻게 바뀌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EU는 회원국 정부에 거주 중인 영국인에게 관대한 조치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조치는 기본적으로 상호적인 것이다. 만약 가족 중 영국인(혹은 EU 회원국민)이 있다면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거주권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은 5년 이상 거주한 EU 회원국민의 경우 정착 지위를, 5년 미만은 정착 전 지위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쪽 국민은 상대방 국경을 통과할 때 6개월 이상 유효기간이 남은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EU와 영국은 각각 양쪽 국민이 3월 30일부터 불법적으로 체류하거나 근로하는 신세가 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혼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EU에서 공부하는 영국 학생 중 일부가 ‘비(非)EU 회원국민’으로 분류돼 높은 학비를 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 항공·물류는 어떻게
적잖은 혼란이 불가피하다. 당장 항공부문은 아무런 대체 협약이 없다. 다만 EU는 혼란을 막기 위해 2020년 3월 30일까지 일시적으로 EU와 영국을 오가는 항공편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EU 회원국 개인이나 법인이 대주주가 아니면 EU 내 항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영국 항공사는 항공 노선을 조정해야 할 전망이다. 영국과 EU가 서로 면허를 인정해주기로 하는 규약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차나 버스, 화물차 등의 사업자 면허나 개인 조종사 면허증, 차량 운전면허증 등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물류도 영향을 받는다. 당장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도버해협을 통해 화물을 실어나르는 화물 운송비가 크게 비싸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아주 간단한 통관 및 검역 절차만으로 양쪽을 오갈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물건의 원산지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고 신고 서류를 확인해야 해서다. 화물차 기사의 여권을 검사하고 면허도 확인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큰 혼잡이 예상된다.
(3) 영국과 아일랜드 간 통행은
노딜 브렉시트 시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비회원국인 영국은 지금처럼 자유로운 통관을 하기 어렵다.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통관 때마다 검역을 거치고 원산지를 확인해 관세를 물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영국과 EU가 합의한 내용에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한 ‘백스톱(안전장치)’으로서 별도로 합의할 때까지 관세동맹에 잔류한다는 조항이 있었으나 영국 하원에서 부결돼 의미가 없어졌다. 당초 EU는 영국 중 북아일랜드만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백스톱을 제안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지만 EU와 자유로이 거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으나 이것이 분리독립을 자극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영국 전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결국 브렉시트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혔다.
(4) 관세 부담 얼마나 증가하나
브렉시트를 한다 해도 개인이 내는 소득세와 법인이 내는 법인세는 이중과세되지 않는다. 영국과 EU 모든 회원국은 상호 이중과세 방지협약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세는 얘기가 다르다. 노딜 브렉시트 시 영국과 EU 간에 주고받는 상품 등은 기본적으로 관세 부과 대상이다. 다만 세율은 상품마다 다르다. 영국은 EU산 물품을 수입할 때 세계무역기구(WTO)의 최혜국대우(MFN) 세율을 적용하겠다고 WTO에 통보했다. 이 방식에 따르면 독일차는 영국에 수출할 때 10% 관세를 적용받는다. 반면 산업용 기계는 1.8%, 전자기기는 2.5% 등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받는다. 의약품은 관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부가가치세도 달라진다. 양쪽은 이제 ‘남남’이므로 상대방에 물건을 수출할 때는 부가세를 면세받고, 수입할 때는 부가세를 내야 한다.
(5) 런던 금융산업 타격은
영국 금융회사가 EU 내에서 영업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예컨대 EU 회원국에 법인을 설치하지 않고 지사 형태로 영업해온 영국 은행이나 보험사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 다시 면허를 획득할 때까지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없다. 온라인 판매도 안 된다. 영국 금융사가 제공하는 결제시스템도 지역에 따라 사용하지 못하는 곳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JP모간, 씨티은행 등 글로벌 투자은행사는 런던 근무 인력을 프랑스 파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재배치하는 중이다. 인재를 확보하는 데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영국 런던의 유로화 파생상품청산소와 증권보관소 등도 기능에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 EU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회원국 기업들이 영국의 청산소(CCP)와 증권보관소(CSD)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을 각각 12개월과 24개월 연장하는 조치를 마련해 뒀다. EU는 궁극적으로 유로화 청산기능을 런던에서 되찾아올 것으로 알려졌다.
(6) 영국 경제가 받을 파장은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영국이 ‘영광스러운 고립’을 통해 더 번창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악영향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노딜 등 하드 브렉시트 시 영국이 입을 손실은 국내총생산(GDP)의 4%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이민자 유입 중단도 경제에는 마이너스다. 영국 런던 경제성과센터(CEP)는 노딜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인 1인당 GDP가 향후 10년간 8.7% 감소(생산성 영향 고려 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중 무역으로 인한 영향이 -8.1%고 이민자 감소로 인한 영향은 -0.6%로 계산했다. 캐나다인인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1970년대 오일쇼크 같은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7) 한국에 미칠 영향은
영국에는 한국 기업 100여 곳이 진출해 있다. 연간 교역 규모는 144억달러가량으로 전체의 1.4% 정도다. 수출품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이 많고 수입품은 위스키 등 다양한 소비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기준으로 수출 품목 수로는 전체의 74.2%, 금액으로는 66.0%가 노딜 브렉시트 영향권에 들어 있다. 정부는 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가능한 한 빨리 체결해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외교부는 브렉시트 직후 공식 협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국인의 영국 여행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영국은 EU와 별개로 한국 국민에게 최대 6개월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8) 영국이 준비하는 '비장의 카드'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결된 뒤 영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의회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노딜 브렉시트가 확정됐을 때를 대비한 계획은 마련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지난 7일 보도에 따르면 일부 장관들은 작년 여름부터 비밀리에 마크 세드윌 국가안보보좌관, BOE 관계자 등과 함께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대대적인 감세안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젝트 애프터’라는 이름의 이 논의체에서는 관세와 법인세율을 대폭 삭감하는 방안부터 공급부문 구조개혁과 수출 지원 등의 방법까지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는 중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