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목의 선전狂 시대] 런정페이가 통신장교 출신? 화웨이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입력 2019-02-16 12:19
수정 2019-02-16 13:39
실제로는 통신과 관계없는 건설병과 출신
성장과정은 순수 민간 기업에 가까워
중국 기업으로서 신뢰 한계, 극복 어려울듯



요즘 기사를 쓰기만 하면 악플이 달리는 주제가 있다. 바로 화웨이다. 우호적인 기사는 물론, 네티즌들의 기준에 비춰 조금이라도 덜 비판적이면 "기자는 화웨이에게 얼마나 돈을 받았느냐" 등의 악플이 달린다.

기사에 악플이 달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자 개인으로도 크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중국 산업의 한국 추격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그 흐름의 선두에 서 있는 화웨이를 왜곡된 시선으로 보려 하는 것은 우려된다. 적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된 대응을 할 수 있다. 상대가 중국 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소비자 제품 영역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상대할 수 있는 경쟁력을 축적한 것은 중국에서 사실상 화웨이가 유일하다. 중국 정부의 지원과 기술을 훔치는 것으로 가능했다면 다른 중국 기업들은 왜 안되고 화웨이만 가능했을까. 그같은 차별성에 대해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런정페이가 통신장교 출신?



화웨이의 창업자인 런정페이는 1968년에서 1982년까지 군 복무를 했다. 1944년생이니 30대 후반까지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군에서 보냈다.

이와 관련해 국내 매체들은 통신장교 출신이라고 흔히 서술한다. 간혹 정보장교 출신이라고 쓰는 곳들도 있다.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런정페이의 군 생활은 중국 내 여러 문헌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만 통신이나 정보 관련 업무를 했다는 내용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충칭 건축공정학원에 그는 이후 군대에서도 건축 관련 업무를 했다. 병과 자체도 건축병.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공병의 그것이다.

런정페이의 군 복무 당시 중국은 전문적인 엔지니어링업체가 드물었던만큼 공장이나 사회 인프라 건설에 자주 동원됐다. 군에 입대해 첫번째 담당한 업무는 프랑스에서 수입한 석유 정제 설비를 중국 동북지역의 랴오양에 설치하는 일이었다.

1982년 군을 제대해서는 난하이석유의 선전 지사에 입사했다. 당시 군 현대화를 위해 대대적으로 감군을 하던 중국은 제대 군인들의 직업까지 알선해줬다. 그의 난하이석유 입사는 군 시절의 장기를 살릴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런정페이가 통신장교, 혹은 정보장교라고 규정하는 것은 화웨이의 성장 과정에 중국 군대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냄새를 풍긴다. 당시 습득한 지식이나 구축한 인맥이 화웨이의 성장에 도움이 됐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면 런정페이는 일반적으로 아는 공병에 가까웠다. 물론 젊은 시절 다른 중국인들에 비해 기술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것은 런정페이 개인적으로 큰 자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팩트가 아닌 것인 아닌거다.


화웨이가 군 소속 기업?



국내 매체에는 런정페이가 출신 성분 때문에 핍박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국민당 국영기업 간부 출신으로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런정페이 역시 나쁜 출신 성분으로 홀대를 받았다. 집안은 문화혁명 시절 흑색분자로 규정됐으며 그의 아버지도 직접적인 핍박을 받았다. 대학 시절부터 공산당 입당을 희망했지만 계속 반려돼다 군 복무가 끝날 때쯤에야 입당에 성공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셔츠라는 걸 입어본 적이 없고, 이불을 셋이서 덮고 자라며 꿈은 하얀색 찐빵 하나를 혼자 온전히 먹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대부분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와 연관을 맺고 있다. 특히 제조업체들은 이같은 경향이 더욱 심하다.

최대 가전업체인 메이디는 일종의 농촌 공공기업인 향진기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를 추격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업체 BOE는 베이징시 산하 브라운관 제조업체였다. 중국 2위 TV업체 스카이워스는 국영 방산업체를 뿌리로 하고 있으며, 하이얼이 칭다오에서 노후화된 국영 냉장고 공장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화웨이는 아니다. 이후 사업 확장과정에서 지방 정부 등에 지분을 일부 넘긴 것으로 분석되지만 출발 당시에는 순수 민간기업이었다.

난하이석유에 입사했던 런정페이는 계약 과정에서 생각지 않은 문제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그는 사직서를 내고 1987년 화웨이를 차렸다. 이제 막 가정에 유선전화가 보급되고 있던 중국 사정에 맞춰 선전에서 가까운 홍콩에서 전화 중계기를 수입해 파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43세의 런정페이는 이혼 당한데다 고혈압에 당뇨를 앓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업이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가운데 민영기업이라는 사실은 곧 불이익을 의미했다. 초기 화웨이는 일종의 거주 자격증인 후커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기능공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보안도 취약했기에 연구 중인 시제품이나 에어컨 등이 좀도둑에게 털리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기록이다. 논란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30여년 전 기록을 조작했을까? 중국군이 화웨이가 오늘날의 위치까지 성장할줄 미리 알고 정체를 위장하기 위해 30여년 전에 이미 갖은 술수를 썼던 걸까?

화웨이의 성장은 중국 정부의 지원 때문?

계획경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중국에서 정부는 특정 산업을 집중 지원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조선과 철강 등 중공업, 최근에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다.

화웨이는 중국 전자산업 중 가장 글로벌 경쟁력 있는 기업이지만 애초에 중국 정부가 밀어주는 회사는 아니었다.

1996년 중국 정부는 "포춘 500대 기업 리스트에 중국 기업들의 이름을 올리겠다"며 6대 지원 기업을 발표했다. 전자산업에서는 스카이워스와 하이얼이 선정됐다.

화웨이의 주력 사업인 통신설비 영역에서도 화웨이는 정부의 중점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선전에는 ZTE가 국유 기업에 뿌리를 뒀고, 지금은 시장에서 잊혀졌지만 베이징 산하 기업에서 출발한 다탕은 2003년 중국 독자 3G 통신장비를 제조하는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상대적인 불이익을 이겨내기 위해 화웨이는 지방 정부를 돌며 합작업체를 차렸다. 화웨이의 지분을 지방 정부 산하 공기업에 넘기는 방식으로 합적업체를 만든 뒤, 일정 정도의 수익을 고정적으로 지불하는 방식이다. 지방 정부가 자신들과 관계를 맺은 화웨이를 밀어주면 본인들의 수익도 늘어나는 구조다. 신규 수주를 맡기는 것은 물론, 기존 설비를 일부러 화웨이의 것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스촨성 전신국에 33%의 확정 수익률을 약속하며 1996년 합작사를 차려 이듬해인 1997년 스촨성에서 화웨이의 점유율이 25%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화웨이는 이같은 방식을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 중국 내 1위로 성장했다.

지방정부가 화웨이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전략을 짰다는 점에서 결국 이 역시 화웨이가 정부 지원을 받은 것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화웨이를 점 찍고 전폭지원한 것이 아니라 국영 기업들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의 생존을 모색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화웨이 장비는 문제 없나



화웨이에 대한 주된 의혹 중 회사내에 당 위원회가 조직돼 있어 화웨이의 일상 경영에 중국 공산당이 개입한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 의회의 관련 청문회 때도 제기됐던 의혹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체는 의무적으로 해당 조직을 둔다. 삼성전자 등 해외 기업들의 대규모 사업장에도 조직돼 있다. 이들의 업무는 직원들의 권익과 관련한 제안을 사업체에 하는 것으로, 노조인 공회가 유명무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한다고 하기 어렵다.

역시 미국 의회의 해당 청문회에서는 국가 보안과 관련한 정보는 기업이 모두 넘기도록 중국 법에 규정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2016년 폐지됐다.

그렇다고 해서 화웨이 장비가 전혀 문제 없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공산당이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 전반을 통제하는 국가에서 기업이 정부 혹은 공산당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 위원회가 화웨이 안에 있든 없든, 정보 이전에 관한 내용이 법에 규정돼 있든 없든 중국 정부는 화웨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카카오가 한국 수사당국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이들에 대한 정보를 넘길 수 밖에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드웨어 업체인 화웨이가 자사이 통신장비에 실제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한 부품을 설치했다는 것은 규명된 적이 없지만 말이다.

문제는 "왜 화웨이인가"다

화웨이 장비의 보안성이 에릭슨이나 삼성전자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증언은 없었다. 화웨이가 통신장비에 스파이 칩 등을 설치했다면 에릭슨 등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이 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경쟁자의 가장 큰 약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유독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와 연결된다. 많은 국가들이 중국에 느끼는 불신과 위협감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 정부가 활용하기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기술 절도 등이 밝혀진 적이 있지만 중국 기업이 아니었다면 화웨이가 중국 기업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화웨이는 중국 국내에서도 불리한 조건을 부단히 극복하며 성장한 기업이다. 화웨이보다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많지만 스마트폰과 같은 소비자 상품에서 삼성전자와 애플 등 글로벌 업체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은 일찌기 없었다. 중국인들이 사석에서 만나면 알리바바나 텐센트보다 화웨이를 '중국의 자랑'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하지만 화웨이가 중국 기업인 이상 이같은 장점들은 모두 가려진다. 정부 지원이 적었다지만 중국 기업 중에서 그런 것이고, 글로벌 경쟁자들에 비해서는 전기료 및 수도료 할인부터 적지 않은 지원이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마오쩌둥 사상을 열심히 공부한 런정페이는 일상적인 경영 및 대화에서도 마오쩌둥의 말과 전략을 자주 인용한다. 중국이 아니었다면 단순히 자국 정치인의 사상을 경영에 적용한다고 해서 국가와의 관계 등을 의심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웨이는 중국 기업들이 성장해 가면서 태생적으로 맞닥드리는 일종의 한계를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국가의 신뢰도와 투명도가 기업에도 적용돼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라는 국가나 정부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기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다. 그리고 이같은 변화는 가까운 시간 내에는 불가능하다.

중국 기업의 기술이나 가격 경쟁력의 성장과 상관 없이 그들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선전= 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