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인공지능(AI)의 언어 능력이 급성장하고 있다. 자연어(사람의 일상어)를 중심으로 한 대화 기술이 곧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다.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종류의 대화형 AI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학자들이 최근 AI의 소통 능력을 평가하면서 내놓은 미래 전망이다.
그동안 음성 AI의 성장 속도는 더뎠다. 대부분의 정보기술(IT) 기업이 채용한 언어 모델인 RNN(순환신경망모델)으로는 문장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어텐션(attention) 기반의 언어모델이다. 중요한 단어에 집중해 발언 의도를 분석하면서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IBM이 이 원리를 이용해 2006년 ‘온라인 강의 조교’ 질 왓슨을 선보였다. 그해 미국 조지아공대 학생 300여 명이 인공지능 강의를 온라인으로 수강했는데 종강할 때까지 질 왓슨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질 왓슨은 ‘박사 과정의 20대 백인 여성’으로 행세하며 정확하고 빠른 답변으로 수강생들의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에는 구글의 ‘말귀 알아듣는 음성 챗봇’이 화제를 모았다. 이 챗봇은 미용실이나 음식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아줬다. 단순한 예약 차원을 넘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참석자 수도 알렸다. 상대방 목소리를 인식해서 예약 시간을 조율하기까지 했다. 구글은 머신러닝과 챗봇, 말하는 구글 듀플렉스 기술을 조합해서 이를 만들었다.
올해 CES에서는 구글 테마파크의 인공지능 로봇들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그중 하나인 할머니 로봇은 능청스러울 정도의 의사소통으로 관람객들을 환호하게 했다. 줄을 선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좋은 오후야”라며 말을 걸고,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 어디에 올릴 거니?” 등의 농담을 자연스레 건넸다.
그제는 IBM이 개발한 토론 전용 AI가 인간 토론 챔피언과 유머를 섞어가며 공방전을 펼쳐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토론 AI’는 상대에게 “저는 인간과 대화하며 많이 배웠지만 당신은 기계와의 대결이 처음일 것”이라며 “미래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사람들은 둘의 승부보다 AI의 농담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물론 인간 고유의 유머 감각은 아직 AI가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다. ‘웃음은 15개의 안면 근육 수축으로 나타나는 신체 반응’이라는 식의 과학적 알고리즘만으로는 사람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유머를 흉내낼 정도까지 왔다는 점에서는 흥미롭다. 앞으로는 “유머 감각 없는 사람은 스프링 없는 마차와 같다”는 격언의 주어를 ‘유머 감각 없는 AI’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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