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등 5곳 올 자치경찰 시범실시…학계 "실패한 제주 사례의 연장" 지적

입력 2019-02-14 18:00
수정 2019-02-15 09:25
당·정·청 협의회 방안 확정
국가경찰 4만여명 단계 이관
치안범죄·교통사고 수사권도 시·도지사에 본부장 등 임명권

학계 "무늬만 자치경찰" 비판
지구대·파출소만 넘겨줘…업무 중복·예산 낭비 등 초래
"바뀌는 건 경찰 신분뿐…더미래硏 제시안보다 한참 후퇴"
참여연대 "달라진 것 없다. 자치경찰 취지와 맞지않아"
檢 "경찰권 문어발식 확장" 격앙
문무일, 다음주 반대 의사 공개 표명 가능성


[ 안대규/김소현 기자 ] 올해 안에 서울시, 세종시, 제주도를 비롯한 5개 광역시·도에서 자치경찰제가 시범 시행된다. 자치경찰은 여성 청소년 등에 대한 치안과 교통 수사권을 갖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치안을 책임지는 시대가 열리면서 시·도지사에게는 자치경찰본부장 등의 임명권도 부여된다. 하지만 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에서는 수사권에 제한이 있는 데다, 기존 경찰 조직으로부터 지구대 파출소만 이관받는다는 점에서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도지사에 자치경찰 간부 임명권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자치경찰제 도입 관련 당·정·청 협의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신속한 자치경찰제 도입을 위해 홍익표 의원이 경찰법 전면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여당 측에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조 의장 등이 참석했고, 정부 측에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민갑룡 경찰청장 등이, 청와대에선 조국 민정수석과 김영배 민정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합의한 법률안에 따르면 자치경찰은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등 주민 밀착형 민생 치안 활동을 수행한다. 공무집행방해 수사권, 현장 초동 조치권을 갖고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치안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와 교통사고 조사도 담당한다. 자치경찰본부장과 자치경찰대장 임명권은 시·도지사에게 부여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시도경찰위원회’를 설치해 견제토록 했다.

자치경찰 인력은 자치단체의 신규 인력 증원 없이 총 4만3000명을 국가경찰에서 단계적으로 이관하는 방식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초기 지방경찰은 국가직으로 유지하되 단계적으로 지방직 전환을 검토한다. 2021년에는 자치경찰제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되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자치경찰 사무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시범시행하는 서울시, 세종시, 제주도를 제외한 나머지 두 개 시·도는 추후 논의를 거쳐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검찰이 반발하고 있어 법안 처리에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실패한 제주 사례의 연장선” 지적도

학계와 시민단체, 법조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실패한 제주 자치경찰제의 연장선”이라거나 “자치경찰제를 흉내만 낸 것”이라는 반응이 많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변호사)은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자치경찰제가 논의됐는데, 국가경찰제 형태를 존치시켰다는 점에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가 아니라 지구대와 파출소만 자치경찰로 넘겨 사실상 국가 경찰과 자치경찰 간 업무가 중복됨에 따라 ‘신고 혼선’, ‘예산 낭비’ 등의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원상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국가경찰이 싫어하는 것만 넘겨 실패로 끝난 제주 자치경찰 사례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도 “이번에 바뀌는 건 일부 경찰의 신분일 뿐”이라며 “민간인 사찰 논란이 컸던 ‘정보경찰’에 대한 분리 방안도 빠져 경찰권이 강력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안은 여당 내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작년 11월 제시한 ‘국가경찰 80% 수준의 자치경찰 이관’과 ‘모든 분야의 수사권 확보’ 등 자치경찰제 성공요건안보다 한참 후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 간 치안불균형, 시·도지사 임명권에 따른 정치적 중립성 등은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의 선결과제로 내건 ‘실효적 자치경찰제’가 물건너가고 “경찰권이 문어발식으로 확장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다음주쯤 반대 의사를 공개 표명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대규/김소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