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논설위원
[ 권영설 기자 ]
블루오션전략이 새 시장을 찾아내는 방법론으로 제시한 ‘여섯 가지 경로’ 가운데 ‘시간 경과에 따른 외부 트렌드 형성에 참여하라’는 조언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추세를 찾아내고 거기에 적극 참여해 새 시장을 개척하라는 것이다. 직거래, 규제완화, 플랫폼, 친환경 등이 이런 트렌드의 예다. 요즘 기술 방면에서는 단연 인공지능(AI)을 꼽을 수 있다.
AI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1990년대 상용화된 인터넷과 견줄 만하다. 제조 유통 서비스 등 모든 부문에서 인터넷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AI는 여기에 더해 인간의 삶 전반을 바꿔놓을 것이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가 준 충격은 전초전에 불과한 사건이다. 자율주행자동차, 드론에서 보듯 사람이 하던 역할을 기계가, 그것도 자동화된 AI가 하게 된다.
경제 생활 문화 바뀌는 大변혁
건물 사이에 AI 경보기가 설치되면 모두가 잠든 밤에도 초기 화재에 즉각 119 신고를 할 수 있다. 방대한 데이터로 컴퓨터를 가르치는 딥러닝을 제대로 수행하면 기계가 사람보다 일을 훨씬 잘할 수 있다. AI가 수만 장의 MRI 사진을 수초 안에 분석해 의사보다 훨씬 뛰어난 진단을 내고 있다. 잘 익은 수박을 모바일 카메라 스캔으로 골라내는 날이 곧 오게 됐다.
‘트렌드 형성에 참여’하기 위해선 일단 ‘무조건’ 우리 업종에 적용해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이런 기술들을 남의 일인 것처럼 지켜보는 구경꾼이 돼서는 안 된다. 실제는 어떤가. 새로운 기술은 신생 벤처회사나 기술기업이 하는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과물이 나올 때 뛰어들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수년 내 현실화될 트렌드에서 우리 회사가 앞서가는 주인공이 되겠다는 의지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AI는 트렌드를 넘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가 차원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차원의 AI 연구개발과 투자를 확대하는 ‘AI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지난주 서명한 것은 작년 10월 3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첨단기술 분야 견제와 압박을 AI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선언에 대한 맞불이다. 중국은 폐쇄회로TV(CCTV)로 국민의 모든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고 특히 대대적인 생산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는 상태다.
트렌드 주도해야 新시장 개척
중요한 것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AI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스티치픽스를 예로 들면 빅데이터와 AI에 기반한 패션 전자상거래로 창업 10년이 채 안돼 시가총액 23억5000만달러의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너무 많은 상품 때문에 ‘선택 장애’를 겪는 소비자의 마음을 잡았다.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업종에서 AI가 활성화되는 미래를 먼저 상상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블루오션전략 창시자인 김위찬, 르네마보안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결정적인 트렌드를 지렛대 삼아 도약하고 싶다면 보통 3~5년 정도는 내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렌드가 구현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다 보면 내다볼 수 있다. 플로리다 디즈니월드가 개관했을 때 일이다. 사회자는 디즈니 여사를 소개하며 “이미 작고한 디즈니 씨가 이 디즈니월드를 못 보고 가서 너무 아쉽다”고 했을 때 디즈니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씀! 그 사람이야말로 디즈니월드를 가장 먼저 본 걸요!”
지금부터 미래까지 이어져 있는 피할 수 없는 트렌드를 읽어내고, 지금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것. 신시장 개척을 위한 유용한 방법론이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