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자영업·소상공인과 대화
정부·자영업자 온도차 여전
문 대통령 "최저임금으로 어려움 가중…미안한 마음"이라면서도
정책기조 수정 아닌 속도조절 시사…보완조치만 강조
자영업자 "지금도 힘든데, 정책 안바꾼다는 얘기로 들려"
[ 손성태/이우상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소상공인, 자영업자와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중소·벤처기업인과 대기업·중견기업, 혁신벤처기업에 이어 새해 들어 네 번째 경제 주체와의 소통행보다.
문 대통령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청와대로 불러 직접 소통하기는 처음이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 경제정책의 최대 피해자인 이들의 집단 반발이 만만찮은 데다 민생경제 회복의 키를 쥐고 있는 경제 주체란 판단에서다.
“내년 최저임금 동결해달라”
문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의견도 충분히 대변되도록 하겠다”며 ‘속도조절론’을 시사했다. 20여 명의 현장 즉석 질문자가 건의한 카드수수료와 임대료 인하, 상권보호 요청에 직접 답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정책방향을 놓고는 자영업자와 여전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방기홍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다 죽게 생겼다”며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을 대신해 답변자로 나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은 대통령과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참석자는 “현재 최저임금 수준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데 정부가 여전히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오찬간담회에서 “최저임금은 인상 속도라든지 인상금액 부분에 대해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결국은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카드수수료 인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4대 보험료 지원, 상가 임대차 보호, 가맹점 관계 개선 등의 조치가 함께 취해지면 최저임금이 다소 인상돼도 자영업자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텐데…”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이 먼저 인상되고 이런 보완조치들은 국회 입법사항이기 때문에 같은 속도로 이렇게 맞춰지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부의 종합지원대책이 본격 시행되면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지만 현재 인상폭만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 소상공인 및 자영업계의 현실과 문 대통령의 인식이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드수수료 협상권 달라” 요구 쏟아져
이날 최저임금 외에 카드수수료와 임대료 등 비용 문제에 관한 정책건의가 잇따랐다. 김성민 프르네마트 대표는 “자영업자에 대한 카드수수료가 인하됐는데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금융위원회에서 카드수수료 협상권을 자영업자에게 부여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자영업자 등의 금융권 담보대출 연장 문제를 비롯해 스마트폰으로 자동결제되는 ‘제로페이’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이병기 김밥나라 대표는 “전통시장은 상인과 소비자 모두 고령화돼 있어 스마트폰보다 폴더폰을 써 (제로페이가) 무용지물”이라며 “체크카드를 제로페이화하면 수수료가 나가지 않아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정책 건의도 나왔다.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회장은 ‘유통산업발전법 시행규칙상 골목상권 대표 협의체 참여’를 요청했다. 정재안 소상공인자영업연합회 대표는 ‘자영업자에 대한 생활보장 제도’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의 지역가입자 기준 의료보험 부과 문제’ ‘세금 카드로 납부 시 수수료 발생’ 등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최승재 소상인연합회 회장은 “소상공인들이 지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룰 안에서 열심히 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들은 척박한 환경과 구조적 문제 때문에 함께 뛰어갈 힘이 없었고, 힘들고 섭섭한 마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라며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에둘러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자영업자를 위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저는 골목상인의 아들”이라며 “부모님이 연탄 가게를 하신 적이 있는데 어머니와 함께 연탄 리어카를 끌거나 배달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영업자는 호칭은 사장님이지만 실상은 자기고용 노동자에 해당하는 분이 많다. 중층과 하층 자영업자의 소득은 고용노동자보다 못한 실정”이라며 역대 처음으로 청와대에 자영업비서관실을 신설한 의미도 강조했다.
손성태/이우상 기자 mrhand@hankyung.com